나도 섬기고 싶다
ㅇ목사님, 우리 목사님
얼마전 MBC 시사평론 프로 뉴스 후'(?)에서 '목사님, 우리 목사님'이라는 제하의 코너에서, 대형교회의 재산유용, 목사직 세습 등 교회 재산의 사유화를 다뤘다. 보다 보니, 씁쓸해지고, 교회안다니는 면죄부가 느껴질 정도의 적나라한 고발이었다.
한편, 기독교정신을 오롯이 지켜나가는 목자의 이야기도 나왔는데, 일례로 용인의 어느 교회에서는 기존 부지 건물을 매각하고, 새교회로 이전 신축하며, 부동산 매각 이익 40억을 사회에 환원하고, 교회신축비용을 성도들의 헌금기분을 통해 충원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교회 목사님 말씀이 신선한데,, "성도들의 불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열광적으로 환영했다'는 것이고, 한 신도는 인터뷰에서 "너무 기뻤다. 내가 섬기는 교회가 재산을 탐하지 않고 지역에 환원한다는 정신에 감명했으며, 내가 그런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것에 자랑스러웠다"고 말한다.
ㅇ남자들의 판타지-의리와 충성
나이가 벌써 삼십대 한참임에도 무협지와 남성소설을 꽤나 읽는다. 그런 소설에서 가슴을 적시는 부분은 '충성을 바치는 주군을위해, 또는 동생들을 위해 기꺼이 죽고 사지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그런 장면을 만들어내는 환경은 유혈낭자한 폭력이고, 현실의 폭력필드에선 추한 이권이 난무할 뿐, 의리는 찾아볼수 없는 판타지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감동하며 대리만족한다.
ㅇ 감동의 원리는 섬김의 가치
성도로서 성전을 섬기는 것, 부하로서 보스를 섬기는 것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섬김이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며 거기에서 배어나온 행동이 순수하기 때문이다.
ㅇ 나도 섬기고 싶다.
나도 몸과 마음으로 헌심하며 '그분', '그곳-직장(?)', '그 뜻'을 섬기고 싶다. 계급(직급)이 높다고, 고시를 패스했다고, 법적으로 지휘복종하게 되어 있다고 '섬김'을 강요하는 것은 너절하다. '섬김'을 받지 못한다고, 존경받지 못한다고, '규정상의 의무'조차 피곤한 이들에게 존경받고자 안달나서 과시하는 건 초라하기 그지 없다.
ㅇ많이 좋아졌다지만,,
초임지 출근 전날,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불안해서 잠을 못잔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년이 되간다. 그땐 시야도 좁았지만, 가시권 너머의 풍경이 너무 어두워 알고싶지도 않았다. 좀더 알아가는 속도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경찰은 깨끗해져가는 것을 볼 수 있어 비교적 행복한 십년이었다.
ㅇ단단하게 남아있는 오물덩어리
그러나 아직도 '섬김받지 못하는 헛된 권위'와 거기서 파생되는 더러움이 결정적인 요로를 막고 있다. 도도한 흐름에 씻겨갔지만 한줌의 단단한 덩어리가 남아 아직도 강에 사는 선량한 각시붕어, 금강모치, 버들가지,모래무지들을 숨쉬게 어렵게 만든다.
ㅇ 그래도!
대충 묻어갈 땐 몰랐던, 격류를 만들고, 바위에 부딪쳐도 포기하지 않고 밝게 노력하는 분들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낙관한다. 포기하지 않고, 들뜨지도 않고 살련다. 언제나 감사한다. 언젠간 나의 충성이 마냥 감격스러울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