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보며 느낀 점

로마인이야기-1

미리해치 2010. 6. 8. 14:49

1. 시오노나나미, 그녀의 라이프워크(Life-work)

 

알다시피, '로마사 이야기'는 전문 역사학자가 아닌, 취미연구자(?)가 대학졸업후 홀연히 이탈리아로 건너가,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를 독학하고, 관계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석하여 쓰기 시작, 인생의 목표로 써나간 LIfe-work다

 

<15권의 로마인 이야기>

한 사람이 일생동안 써나간 역사서로 전 세계를 사로잡다니, 정말 부럽다.

 

2. 로마인이야기 도전과 중단, 재독서

 

20대 때 한번 로마인이야기를 읽다가 중단했다.  율리우스카이사르가 죽고, 아우구스투스가 제국을 이어받은 다음부터는 웬걸 재미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이제 삽십대(도 중반)에, 다시 읽은 이 책은 너무 재미있었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같은 영웅들이 역사에서 퇴장하더라도, 로마인의 역사를 이루는 정치와 제도, 정책(세정, 국방, 치안, 외교 등)의 결정과 그 여파가 어떻게 작용하여 나라를 흥하고 쇠하게 만들었는가의 흐름이 읽혀지는게 재미있었다. 

 

같은 책도 나이에 따라 달리 읽혀지고, 이면을 이해할수 있게 한 성숙을 준 '나이'가 감사한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3. '로마인이야기'의 줄거리 개관

 

<1권-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는 기원전 730년 로마시내 테베레강유역에서 도시국가로 시작한다. 

 

초기 왕의 지배아래 국가의 모습을 갖춰나가지만, 구성원이 점차 넓어지면서, 내부족으로는 평민과 귀족의 대립, 외부적으로는 타부족과의 전쟁 등 갈등요인을 '보다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공화정(평민-귀족 원로원-집정관)의 형태로 바뀌고, 이탈리아 반도 이남을 통일하게 된다.

 

<늑대의 젖을 먹는 '로물루스'와 '레무스'형제>

결국 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로물루스가 승리했기에, '로물루스'의 나라, '로마'가 되었다.

 

사실 1권이 '시작'일 뿐이지만, 15권 중 1권이 차지하는 비율도 500년이며, 사실 이 기간 중 로마는 당시 선진국인 '그리스'에 사절단을 보내, '어떤 식의 국가를 구성해야 하는지'를 면밀하게 탐색하는 등 로마가 1,300년동안 융성하게 한 기본 인프라를 구축했다

 

 

<2권-한니발전쟁>

 

로마가 발호를 시작하면서 필연적으로 카르타고와 패권을 다투게 된다. 

 

풍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미 패권국의 지위를 갖고 있던 카르타고와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지만, 특히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희대의 전략가 한니발에게 20여년동안 거의 존폐의 위기를 몇차례에 맞았지만 극복하고, 적장인 한니발에게 '전략전술의 개념'을 맞은편에서 배워나간, 젊은 지장 스키피오를 앞세워 결국 승리한다.

 

<한니발의 입상>

 (한니발(카르타고) 대 스키피오(로마)사이 최후의 승자는 스키피오지만, 스키피오는 로마의 정말한 국가동원시스템 속에서 전술단위의 승리로 이겼을 뿐이나, 한니발은 조국으로부터 도움은 커녕 방해를 많이 받으며, 혼자서 병참, 외교 등 전략은 물론, 그당시까지 일반적이지 않았던, 기능별 군대의 합격(코끼리, 기마), 유인, 회피, 포위, 기만, 첩보 등 전술을 통해 로마를 거의 괴사상태로 몰아붙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때 스페인으로 건너가, 거기서 군대를 육성하고, 알프스 옆 사군포를 먼저 친 후, 로마군이 좌우 회유로를 방어할 때,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알프스를 최초로 넘어가서 결국 로마를 경악시킨 장면은,,, 발끝까지 짜릿함을 느끼해준 통쾌한 장면이었다.  - 역사속 남자에게 매혹되길 즐기는 시오노나나미도 한니발에게 반했는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동맹' 등 국제정치의 벽에 부딪히고, 자신의 전술기량을 타산지석으로 습득한 스키피오에게 결국 패배한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인걸이 시류와 지리를 잘못 타고나, 장렬히 좌절하는 모습은 안타깝고도 깊은 여운과, 묵직한 감동을 준다.) 

 

 

<3권-승자의 혼미>

 

3차에 걸친 포에니전쟁은 로마의 국가운영시스템(특히 국방과 전쟁)을 대단히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만들었고, 당대 최고의 살인기계로 절차탁마한 로마군단을 보유한 로마는 지중해세계 최고의 패권국으로 부상한다.  그러나, 외적이 없어지고, 국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정치적 경제적 권력 배분에 대한 계층별 갈등이 폭발하는데,

 

기인 전쟁도중 로마를 지탱해온, '오블리스 노블리제'는 실종되고, 평민의 정치적 경제적 권익을 확보하려 했던 '고귀한 귀족' 그라쿠스 형제를 돌로 쳐죽이는 등 정치적 혼동은 가중됐으며, '귀족파', '민중파'로 갈라져 형성된 정파-군벌간 권력을 뺏고 뺏으며 유혈사태가 난자한다. 

 

이 와중에 '민중파'의 태두 마리우스의 조카로,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서깊은 귀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태어난다.

 

 

<4~5권, 율리우스 카이사르>

 

카이사르의 성장과 등장은 매우 느리다. 

 

다른 불세출의 인물처럼 20대때 천재성을 발휘하여 주변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파의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는 귀족으로 태어났음에도, 당시 권력층이었던 귀족층의 숙청을 피해다니며, 조금씩 조금씩 기반을 닦아오다가, 40세에 이르러, 집정관에 당선됨으로써 겨우 역사의 표지로 등장한다.

 

그러나, 로마역사가 몸젠은 '카이사르를 로마유일의 창조적 천재'라고 극찬한다.  카이사르는 '나는 나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듯, 타인도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신념 속에서, 누군가를 강압하거나, 숙청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군사적 재능으로 적지를 평정하고, 정치에선 자신보다 우위에 있언 크라수스-폼페이우스와 연대하여 상황을 극복하다가 결국 그들와의 정쟁에서도 승리하며, 정책에선 '독점적 체제의 분할'과 '비효율적 의사결정구조 개선'이라는 목적하에 하나의 정책으로 다양한 효과를 이루는 정책으로 사회를 바꿔냈다.

 

그러나, 독점적 기득권이 손아귀의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참지못하고, 그것을 전쟁, 정치에서도 방어해내지 못한 원로원파에 의해, 기원전 44년 56세의 나이로 암살당한다.

 

<로마 유일의 창조적 천재라는 카이사르>

 

영국-프랑스-독일 등을 지리적으로 분할지배하여, '유럽은 카이사르가 설계했다"는 격언을 당시 피지배측 영국인들이 자랑스럽게 말할 뿐 아니라, 유럽을 비롯해 세계를 운영하는 제도의 시초는 그의 머리속에서 나온 것들이 많다(일단 거의 지금과 유사한 '달력'을 비롯)

 

 

사실, 시오노나나미는 카이사르를 비롯, 로마사의 영웅들에게 매혹되어 있어, 지나치게 주관적이다 싶지만, 시오노나미는 카이사르가 실제로 추진한 '로마의 제국화'를 필연적이라고 변명한다.

 

즉 기존의 이탈리아 반도를 차지하던 로마에서 벗어나,  북아프리카-이집트-그리스-이탈리아-갈리아(지금의 프랑스와 남중부 유럽일대) 일대를 제패하게된 양적 팽창에 따라 그간 고착되어 온 '원로원중심의 권력의 사익화'에서, '책임있고 신속한 의사결정구조로의 권력체제 전환'이라는 것이다.

 

 

<6권 팍스로마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생전, 클레오파트라와 사이에서 케사리온을 비롯, 많은 사생아를 남겼다.  그러나,  먼친척 조카인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입적시켜 정치적후계자로 삼았다.

 

시오노나나미는 못생겼지만 화려했던 카이사르보다는,,, 미남이지만, 속내를 내보이지 않고 언제나 노심초사 신중했던 옥타비아누스에게 점수가 짠편이다. 

 

그러나, 나로선 '위대한 자의 후계자로 지명받아 중단된 대업'을 횡행하는 음모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불골쇄신 달성해낸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에게 안쓰러움과 함께 더 큰 호감이 갔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공짜후계자를 자처하는 자와, 카이사르를 부정하는 정적들 속에서 18세의 나이로 등장하여, 생존하면서도 연대하면서 조금씩 영향력을 확대하다가, 내부로는 정적들을 모두 숙청하고, 외부로는 정적과 연합한 이집트 등을 정복하면서 33세에 드디어 1인자의 자리에 오른다. 

 

<옥타비아누스의 입상>

실제 이렇게 화려한 군장을 걸쳤다기 보다는, 소박한 복장과 태도로 조용히 로마를 지배했고, 피로 이어진 가족의 후계연결을 중시했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아래 가족 부조상이 잘 묘사하고 있는 듯

 

 

 

그리곤, 여기서부터가 더 흥미진진했는데,,, '황제'로 등극한 것이 아니라, 향후 로마제국의 황제가 발휘한 '황제로서의 권한'-즉 법안의 발의와 거부권, 내각의 형성과 조각권, 국방통수권, 속주에 대한 징세와 집행, 제1인자(아우구스투스)의 호칭 등등을 하나씩 획득해 나간다.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의 일생은 겸양한듯하면서도, 철저히 속도를 조절하고, 안전과 신중을 기하면서(양부 카이사르의 암살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절대로 중도에 죽어서는 안된다는 숙제를 줬다) 

 

그에게도 실패는 있었다.  평생 피로 연결된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싶어했지만, 이루지 못했고, 후계전승에서 인간으로서 편협도 저질렀다.  화려했던 양부의 선명한 정치행보에 평생 비교당하며 울분을 터뜨렸다.(아우구스투스의 안전한 정치는 돋보이지 않고 수수했기에)

 

그리곤 대제국 로마의 영토(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일대, 갈리아와 게르만 일부, 그리스)와 명실상부한 '원수정'체제가 확립한 '팍스로마나'를 출범시킨 후, 긴 숙제를 마치고 눈을 감는다.

 

이제부터 로마는 고도성장기를 마치고, 안정 성장기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