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보며 느낀 점

로마인이야기-9 (현제의 시대)

미리해치 2010. 6. 8. 14:57

1. 로마인 이야기-9 <현제의 시대>

 

하루에 30분, 글쓸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달까,, 블로그 끄적거리기가 계속 소홀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읽은지 반년이 다 되어 가는, 로마인이야기의 독후감 정리도 늦고,, )

 

8권-위기와 극복 시대를 가까스로 마치며, 로마사회로부터 혼돈의 시대의 마무리 정리를 요청받고, 재건의 구원투수로 임명받은 황제는 전통명문귀족 출신 네르바였다.

 

네르바 이후,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 피우스, 아우렐리우스를 역사는 5현제의 시대라고 부른다.

 

 

2. 오현제의 시대.

 

오현제 시대의 첫 황제 네르바와 마지막 현제 아우렐리우스는 그다지 큰 치적이 있는 황제는 아니다.

 

고령의 네르바는 암살된 전 황제 도미티아누스와 귀족사회, 시민사회간 관계를 조용하고 온화하게 복원하며, 자신의 후계자로 탁월한 군인 트라야누스를 임명, 권력이양작업을 순조롭게 끝낸 소박한 공로자다.

(로마야사는 그래서 네르바의 가장 큰 치적은 트라야누스를 키웠다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도미티아누스의 암살에 깊히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암시도,,)

 

그리고, <명상록>으로 유명한 철학자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지적능력, 학구열, 인품에도 불구, 게르만과의 계속된 전쟁을 제압하지 못하고 쇠퇴기의 시작에 돌입한 로마을 지탱하고자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극복하지 못한 황제다.   게다가 로마의 쇠퇴기를 시작할 악제 '콤모두스'의 아버지라는 점에서도 후계자를 제대로 지명하지 못한 황제이기도,,,,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장군 막시무스-러셀크로역-에게 후계자가 되어줄 것을 권유했다가 콤모두스에게 암살되었다는 픽션이 있지만,, 영화는 어디까지 영화이고,,)

 

 

3. 건실한 군인 황제, 트라야누스

 

트라야누스는 로마본토의 명문귀족이 아닌, 속주출신으로서 최초로 배출된 황제였고, 그를 상승시킨 건 뛰어난 군사능력이었다. 

 

로마의 전투능력을 최고로 발휘, 그의 치세때 로마영토는 기존 통치하는 영토(오늘날 이탈리아, 그리스, 서유럽 일대와 영국, 스페인, 북아프리카 일대)를 비롯하여 새로이 다키아(헝가리), 파르티잔(이라크) 일부를 복속하므로써, 최대로 팽창한다.

 

팽창된 제국에 대한 그의 통치도 건실하다.  넓어진 제국의 행정관들과 끊임없이 교신하며, 국가를 운영했다.  가벼운 부상으로 덧나 사망하면서, 조카뻘로 후계자 양성하던 하드리아누스에게 정권을 이양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4. 중첩적 인간형의 황제, 하드리아누스

 

트라야누스의 후계자로 일찌감치 지목, 양성되어온 하드리아누스는 상당히 복잡한 인물로, 많은 문학작품의 주인공이 되고 있기도 하며, 어떤 이는 <햄릿>의 성격에 대한 모델이라고도 한다

 

유능한 통치자였지만, 격정적이다.  

 

처음 즉위 통지를 받고 아직 즉위되기도 전에 그의 정적이던 장로급 인물 4명이 전격 처형된다.  어떤 이는 충신의 돌발결정이라고 하지만, 누구도 모르는 것이기에 그의 통치는 극도의 살얼음장같은 분위기에서 시작했고, 말년의 조급증에 기인한 신경질적인 정적처단과 맞물려,,, 그 중간의 긴 치세 전체가 비교적 합리적 통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도 '따뜻한 황제'의 이미지는 얻지 못하고 있다.

 

건실한 행정가였으나, 왠지 불온했다.

 

제국 전역을 몇년에 걸쳐 순회한 부지런한 황제였고, 트라야누스가 확대해온 제국의 방어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방비했으며, 예루살렘의 고질적인 유대인 반란을 근본적으로 제압하며(기독교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탄압'이겠으나,,) 제국의 안전을 반석위에 올려놨지만, '건전한' 이미지는 아니다.

 

전대 황제 트라야누스의 죽음도 '가벼운 부상의 급속한 악화'라는 왠지 석연치 않은 것도 이유이며, 남편 트라야누스의 죽음과 '후계자 지명'유언을 직접 들었다며, 하드리아누스에게 직접 전달시킨 양모와도 왠지 '불온한' 관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역사가와 작가들을 계속 자극해온 소재다.

 

(시오노나나미는, 각종 자료에서 비치는 두 사람의 '낭만적 기질'로 인해 서로 애정을 품었을 가능성이야 있지만, 또 마찬가지, 드러나는 '높은 자존심'으로 인해, '플라토닉한 관계'로 머물렀을 것이라는, 그 역시나 낭만적이고 건전한 변호를 해주고 있긴 하다)

 

정략결혼한 아내와 별다른 애정이 있을리도 없지만, 남색으로 인해, 상대 애인남이 더욱 맹렬히 사랑받고자 자살하기도 했다. 

 

로마황제들이 대놓고 즐기긴 꺼렸던(실질강건하지 못하고 왠지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그리스 문학예술에도 깊히 탐닉했다.  

 

그의 말년도 고독하고 냉랭했다.  친자식이 없었기에, 친척을 양자로 받아 후계자 지명했으며, 게다가 후계자 지명조건이, 자신의 외손자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를 차차기 황제로 삼는 것이었다.

 

신경질적인 통치로 느닷없이 정적을 처단하여, 사람들에게 아득했던 등극초기 숙청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급속한 민심이반을 불러일으켰다. 

 

사망직후 차기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가 눈물로 호소하지 않았다면, 그 많고 많은 치적에도 불구, 황제들에게 의례적으로 허용되던 신격화(로마의 신이라는 지금 의미와 많이 다르니깐,,), 로마공인에게 최고의 형벌이라는 <기록말살형>에 처해질뻔 했다.

 

이렇게 중첩적인 복합한 인간형 하드리아누스가 내게는 참 매력적인 사람이다..

 

 

5. 온화한 황제, 피우스는,, 사실 별 이야기거리가 없다.  양부 하드리아누스를 눈물로 변호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선제의 말년 공안정국을 완화시키고 냉각된 민심을 달래는 치세를 했다.  그리곤 이미 내정되어 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양위한다.

 

 

6. 철학적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구나 한번쯤 이름 들어봤을 <명상록>의 저자, 학문을 사랑했고 온화하고 합리적인 통치자, 그러나 그의 시대는 계속된 전쟁의 연속이었다.  전통적인 적국 파르티잔이 우호적 완충지대로 설정한 아르메니아를 침략한 것을 몰아내는 파르티잔 전쟁은 물론이요, 특히나 게르만족의 침입에 계속 시달렸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시대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완성되어 제국의 방파제 역할을 해두던 게르마니우스 리메스(방벽)이 270년만에 뚫리는 것으로 개시하여, 이때부터 조금씩 전투력의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하는 로마와 게르만족과의 전투는 제국의 완전 몰락시까지 계속된다.

 

게르만족의 생래적 전투력(체격, 승마술, 척박한 환경으로 인한 약탈의 일상화)을 체계적 전술과 병참시스템 등으로 제압해온 로마제국은 이때부턴 점차 비교우위의 격차를 잃어감으로써 사실상 내리막길로 들어서고, 재도약하는 기회도 잃고 계속 패망의 결로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보인다....

 

(개인과 소집단의 전투력이 우수했던 게르만족이 이 시기까지 한번도 로마를 이기지 못하고 계속 열세에 억눌려 있다가, 아우렐리우스 시대를 전후해서부터는 점차 우열을 다투기 어려운 승패도 거둬내고, 그 후론 명실상부한 로마의 적집단이 되버린 이유는 뭘까?

 

역시나, 생산성, 효율성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라틴계인이 게르만계보다 체격도 열등하고, 전투력도 떨어지지만, 로마는 그리스-에트루리아-카르타고 등으로부터 이어받은 기술력과 통신, 유통, 사회운영체제 등을 지속개발해냈고, 도저히 그런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게르만은 로마의 적 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나, 서기 170년을 전후, 로마의 사회적 발전은 정체된 반면, 게르만의 정보 유통 기술의 발전도 어느 궤도에 올라와, 게르만은 로마를 위협할 수 있는 가상'국가'의 모습으로 거대하게 집결시키기 시작한다 -그 전엔 겨우 몇 십만명 단위라도 그 내면은 그저 부족단위의 원시적 사회 )

 

어쨌든,, 철학자로, 학자로 사는게 더 행복했던 마르쿠스 아울레리우스의 고단했던 치세가 전쟁터 속에서 끝이나고, 이제 로마는 본격적인, 그러나, 기 고목이 한꺼번에 쓰러지지 않듯, 고통스러울만큼 지루한 패망의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글레디우스>로 잘 알려진, 악제 콤모두스의 등장이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