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카테고리-4(승부와 자기완성)
추억속 만화카테고리,, 네번째 이야기를 써본다. 그건 바로, 칼날 위를 걷는 자기완성의 도(道)
대학을 다닐땐 잠시 검도를 했다. 한자루 칼에 몸을 맡기고 강호를 주유하는 꿈을 꿔볼만한 고수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운동신경 빵점인 탓에, 친구들로부터 '검도가 아닌 도끼질'이라는 핀잔만 들었다.
그러나, 당시 사범님과 솜씨가 뛰어난 이들의 시범대련을 보면, 진짜 멋있고,, 현란했다. 맨몸끼리 부딪히는 격투기도 훌륭하지만, 역시 '검'엔 뭔가 '독존(獨存)하는 듯한 품격'과 매력이 있다.
우리나라도 '해동검도'등 고유검법이 있지만, 역사적 굴곡속에서, '주류무도의 포스'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일본에선 '국기(國技)'로 군림하기에 '단지 스포츠로서 검도가 아니라, 검을 통해 갈고닦아야 하는 道'는 무엇이냐에 대한 나름대로 진지한 문답을 시도하는 만화들이 있다.
피 바다를 걸으며 추구하는 구도(求道), <베가본드>
미야모도 무사시, 평생 60번이상의 승부에도 한번도 패하지 않은 전설의 승부사,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고 세력도 친구도 없이 고독한 '승부의 도'만을 추구했던 '오륜서'의 저자 , '승부를 관(觀)하는 통찰'을 예술에도 접목시켜, 서예, 그림, 도장 등 예능에도 일가를 이룬 인물
청춘스포츠만화의 걸작 <슬램덩크>의 작자,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긴 호흡으로 그리고 있는 만화다
검객이 출현하는 일본 영화 등을 보면, 검은 '피와 살인'의 도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베가본드>에서 무사시는, 그런 피바다를 걸으면서 '강해지고 싶다. 무엇이 강한 것인가'를 추구한다.
구도는 만만치 않고, 그 역시 자신감과 열등감, 강하고 싶은 의지와 강함에만 사로잡히면 더 나가지 못한다는 딜레마, 강렬한 상승의지와 길을 몰라 헤매는 연약함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갈고 닦으며 한 길을 추구한다.
" '천하무적'이라고 칭송받고 싶을 뿐인가? 한낱 말에 사로잡혀있단 말인가? "
"아니다." "그러면 왜 천하무적을 꿈꾸는가?" "나는 강하다".
"그것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나? 나는. 어디까지 가도 오직 나- 그것뿐이냐. 좀스럽기는."
"나는 그저. 꼭대기가 보고싶을 뿐이야" <베가본드 중, 무사시의 독백 >
스포츠화된 검도에서도 검사의 길 추구, <열혈검객 무사시>
그러나, 미야모도 무사시처럼, 도(道)를 추구하기 위해, 타협없이 죽고 죽이는 길을 갈 순 없다.
'모토가와 무라키'의 초기작 <열혈검객 무사시>는 진정한 검사가 되고자 하는 고교생들의 이야기다.
모토가와 무라기는 최근 완결작 <용(龍)>에서 검(劍)과 무도(武道)의 길을 걸으며,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기여하고자 하는 일본남자의 이야기를 썼다. 비슷한 시기를 그린 일본만화들이 패권만을 희구하는 데 반해, 균형잡힌 시각이라, 꺼리낌없이 즐겼는데, <열혈검객 무사시>는 그 중 '검사'의 길에 집중한 만화다.
비록, 만화답게, 고교생의 무사기행, 전국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대결과 수행 등이 좀 오버했다 싶기도 했지만, '도(道)로써의 검도'를 추구하려는 남자의 이야기는 충분히 인상깊고 공감되었다.
몸을 던져 시대변화를 거부하는 충성의 고수, <월명성희>
일본의 19세기는 서양의 힘을 앞세운 개방요구 속에서 지방영주들의 갈등, 막부의 지배력 상실 등으로 혼란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 젊은 무사들은 '근황파'를 결성해, '천황을 중심으로 한 체제개혁'를 내세우며, 막부와 대립하다가, 결국 집약된 무력을 앞세워 대정봉환(막부가 천황에게 정권을 양도)과,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다.
일본의 근대화는 지배세력을 교체시킨 근황파에세 비롯되었고, 근황파의 지사(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카츠라 고고로 등)들은 오늘날 일본인에게 풍운의 혁명아로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한편, 당시의 혁명을 가로막았던 무사들도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막부수호를 기치로 내세운 채, 근황파무사 숙청의 선봉에 서있던 <신선조>다.
<월명성희>는 그 <신선조>를 소재로 한 만화다. 결국 <신선조>가 추구했던 '막부수호'는 새로운 시대요구에 뒤쳐진 가치였기에, 패배하고 말았는데도, '신선조'는 일본인들에게 또다른 영웅상으로 회자된다. 그건 아마, '남들이 뭐라해도, 내가 모시는 분과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 최후의 1인까지 목숨바치는 모습'이 일본인과 남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인 월명성희도 '달이 빛나면 별은 흐려진다'는 뜻으로, 흐려지는 별의 운명을 맡았음에도, 투쟁하고 희생하는 남자들의 이야기,,)
사실, <월명성희>의 만화적 재미는 그닥 그렇다. 그런데 이 만화가 내게 인상깊은 이유는, <신선조>가 당시 수도(교토)치안을 맡고 있었던 무력집단이기에, 현대 일본 경찰이 <신선조>의 역사적 사상적 정통성을 잇고 있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일본경찰은 지금도 세계 3대 경찰(영국, 일본, 칠레)로 꼽힐만큼, 국민의 신뢰를 얻고 있는데, 그 배경에 '<신선조>의 충성심과 자기절제'를 근거로 하고 있다니 부럽기 짝이없다.
검도인의 정신을 경찰상(像)에 부여하려는 노력 <일평>
신임 경찰 일평은 경찰내에서 손꼽히는 검도의 강자지만, 일에서나 인간적으로 헛점도 많은 순진한 젊은이다.
그런 일평이, 불법총기사범 단속을 주업무로 하는 형사업무에 입문하면서, '총기'라는 극단적 폭력의 도구가 얼마나, 잔인하게 인간과 사회를 황폐하게 만드는지 몸으로 접하게 되고, 한명의 경찰관으로서, 자신의 검은 '폭력의 도구가 아니라, 세상과 인간을 지키는 도구'로 실천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일평>이다.
경찰이 된지, 이제 10년도 넘어버려, 선의를 추구하는 노력에 일정부분 냉소하게 된 나로선 <일평>처럼, 자신의 '검'에 긍지를 갖고, 불법과 폭력에 강력한 의지로 투쟁하는 모습은 동경할 수 밖에 없는 '교범(敎範)이다.
무력의 의미가 상실되었음에도, '경찰'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물리력의 집행자'으로 살아가는 나로선,
'검(劍)이라는 말과 수반되는, '강함과 부드러움', '자기수련', '절제, '강한 억압자에 대한 대항과 약자에의 보호'가 추구해야할 숙제일 것이다,,,,,, 그러나,,,이젠 이정표도 잘 보이지 않는 먼 길이기에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