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카테고리-6 (패권희구)
메이지유신을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문명을 체계적으로 받아들인 일본은, 빠르게 경제,군사대국이 되어, 한때 거의 모든 아시아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까지 일으킨 끝에 패망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중세이후론) 타국을 침략해본 적 없어, 한국인의 감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한때 아시아의 맹주로서, 세계의 반을 지배할 뻔 하다가, 미국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겪고 패한 일본인에겐, 떨치지 못하는 그 시기의 향수가 있는 듯하다.
그런 '침략의 과거'를 성숙하게 극복하지 못하고, 대외외교에서는 '미국의 아시아 함대'로는 종속되어 주체성을 못 찾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엉뚱하게 돌파구를 '패권의 회귀'로 해결하려는 목소리가 있고, 이걸 반영하는 만화들이 있다.
몸 속에 흐르는 피마저도 푸른색일 거라는 만화가, 가와구치 가이치
가와구치 가이치는 극단적이고 긴밀한 상황을 극복해가는 상황속에 우익일보, 패권일본(좀 낮춰봐도 자주 일본)에 대한 노골적인 주장을 내포하여 제시하는 만화가다..
전쟁만화의 명작이라고도 불리는 '침묵의 함대'는 일본 최초의 핵잠수함 함장을 맡게된 주인공이 국가의 명령에서 일탈하여 자신의 잠수함을 자주국을 선언하는 과정에서 겪는 이야기다.
일본 최초, 최고성능의 핵잠 야마토의 함장, 가이에다는 출항직후 잠수한 야마토를 '독립국'으로 선언한다. 보이지 않는 심해에서 언제 어느 곳에도 핵미사일을 날릴 수 있는 위험한 무기의 통제상실에 경악한 각국은 경악한다.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들은 각각 잠수함과 함대를 보내, 격침하려 하지만, 야마토는 이들을 모두 격파하며 점점 미국에 접근한다.
가이에다는 세계인들에게 '미국', 러시아등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역학관계(그리고 그 속에서 자주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일본)와, 그 속에서 '서로의 심장을 한 순간에 뚫어버릴 수 있는 무기'의 존재를 직시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굳이 '목적'과 방향을 정리한다면,, '세계정부, 통일 군대'의 지향 같은 것,,,,
'침묵의 함대'는 긴박한 전투씬, 남자들의 카리스마 등 측면에서 아주 재밌다. 많은 잠수함 창작 콘텐츠의 표절시비를 불러올 정도의 충격을 줬다(언젠가 최민수, 정우성주연 영화 '유령'을 비롯,,)
그러나, 만화를 덮은지 한참을 지나 떠오르는 건, 역시 찜찜하다. 주인공 가이에다의 메세지는 일견 논리적이고 묵직하지만, '일본이 과연 생명을 뺏고 뺏기는 전투를 빌어서, 과연 세계인을 향한 올바른 메세지를 전달할만큼 정직성을 인정받고 있을까?'
가와구치는 그 후에도 많은 만화를 통해, '일본의 강한 자주적 역할을 통한 국제정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상황을 '그나마 현실적으로 설정한', '침묵의 함대'이후 최근작은 극단적이다.
연재중인 '태양의 묵시룩'에서 일본은 대지진끝에 일본열도가 남북의 두개의 섬으로 갈라지는 것이 배경이다. 남일본은 미국에 북일본은 중국에 지배받는 상황속에서, '어떻게 자주성을 찾아가느냐'를 이야기한다.
또 '지팡구'에선,, 군사훈련중 타임슬립에 빠져 2차 세계대전당시로 이동해버린 순양함이 천재적 일본정보장교를 만나, '2차 대전'을 패전이 아니라, '휴전'으로 이끌기 위한 역할을 해내간다는 것인데,,
난 어쩜 이게 가와구치의 현실이자, 한계가 아닌가 싶다. '강한 일본론'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다루기 보다는, '가상의 현실'을 설정하며, '앞으로의 역할'만을 다루고 있다. (과거를 반성해야 현재의 주장도 힘이 있을수 있는 것을,,,)
그외에도, 주제가 다른 전개 속에, 무겁게 그러나 좀 생경하게 '패권일본'의 메세지를 끼워놓는 만화도 있다.
신인류의 미래 , '오메가 트라이버킹덤'
'오메가트라이브킹덤'은 한참 연재되고 있는 만화인데,,,
학교에선 '이지메', '등교거부', '사회부적응자'인 하루는 마찬가지로 사업에 실패, 세상에서 좌절한 아버지에게 이끌려 아프리카 여행을 간다. 그러나, 아버지의 목적은 '보험금을 노린 아들의 살해'였다. 아버지의 '죽임'에 항거하며 오히려 '아버지'를 죽이는,,, 인간으로서 '근본적인 터부'를 저지린 '하루'는, 자신의 모든 존재를 부정하고픈 패닉상태 속에서, 초월적인 존재, '오메가'를 만난다.
오메가는, 지금의 현 인류가 이미, 전 지구적으로 멸종직전의 상태에 있으며, '아버지를 죽이고, 스스로를 부인하려는 혼란스러운 미숙아, 바로 당신'이 다음 신인류를 진화시킬 존재라고 말한다.
아주 흥미로운 설정과 전개였다. 그런데, '하루'는 신인류의 도래와 신체제의 정복을,,,, '아버지'(미국)를 죽이고, '어머니'(모국 일본)을 범하는 '정치체제의 전복'에서 찾으려 한다. 일견 이해도 가는 전개였지만, 작가가 느끼는 '일본의 답답함'이 이렇게 풀릴 수 밖에 없나,,,하는 일면을 본 것 같았다.
남자의 야망과 질주, '생츄어리(성역)'
가와구치 가이치 못지않은,,, 한 보수(保守)하는 만화가 '이케가미 료이치'의 만화다. 우리나라엔 '빛과 그림자'라고 번역되기도,, 스토리와 설정이 멋졌다. 동남아에서 일본인 학살의 아수라장을 뚫고 난민으로 일본에 귀국한 두 남자가, 한명은 빛(정치가)로 한명은 그림자(야쿠자)로 역할하기로 한다는 이야기,,,,
멋진 남성, 예쁜 여자, 정적(政敵), 폭력 등 남자들이 생각없이 보고 좋아할만한 요소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두 주인공은 '패권일본', '강한 일본'을 추구하고 투쟁하며 성공하고 또 좌절한다.
모두가 반성없는 '패권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용'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일본만화가 다 저렇게 반성없이 '패권만'을 추구하고만 있지는 않다.
만화시리즈 3편, 검도시리즈에 썼던 '열혈검객 무사시'의 저자, 무라카미 모토미의 '용'(40편이 넘는 대작)
2차전쟁 전후, 주인공이 시대의 광기와 욕망, 사람들의 선의와 권력욕들 속에서 균형을 맞추고, 희생의 길을 진력해가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고교생 '용'은, '강한 일본남아'가 되고자, '무도 전문학교'에 입학해 '검도인'의 길을 가지만, 시대는 점차, 전쟁의 시기에 접어든다
그 와중에, 자신이 사랑하게 된 여자(자신의 집 고용인)와 신분을 뛰어넘고 결혼한다. 그 과정에서 '상류층인간들 사이에서 윤리와 체면'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깨닫고 고정관념의 벽을 깬다.
한편, 점차 짙어져가는 전운속에서, 타국을 침략하고, 타국인을 죽이는 행위의 비윤리성을 보면서, 주어진 출세의 길이 아니라, 세계인들과의 친구가 되는 길을 선택해 나간다.
<용>은 일본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세계평화에 대한 이해와 균형감각을 보인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만화다(이 만화를 '일본 군국주의 만화'의 전형이라고 폄하한 어느 평론도 있다만,, 내가 보기엔 안 읽고 쓴 듯,,)
냉철한 반성이 겸비되지 않은 이상추구의 허약함
자신의 국가가 힘있어지고, 질곡을 폭력을 써서라도 혁파해나가다는 설정은 멋있기야 하다. 읽을때 손에 땀을 쥐고, 주인공이 한판 이길땐 나도 뿌듯하다.
그러나, 이런 만화들은, '오래 남는 감동'은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은,,'인류 공동체'뿐 아니라, 가까이 이웃하는 한국인에게도 전혀 공감하게 하는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외교가 나약하고, 미국을 비롯, 국제질서 속에서 굴종적으로 처신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그 '오늘'이 과거에 자신들이 얼마나 타국에 못할 짓을 했고, 그 앙금이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불신으로 남아있는 탓인지,,,,그 원인에 대한 반성이 없다.
이런 걸 보면, 일본인의 정치감각과 국민의 성숙도는 여전히 어리다.
메이지유신이전까진, 지역별 영주에게 예속된 상태로, 메이지유신이후에도, 격변하는 지배권력이동속에서 '민중이 권력의 향배'를 결정지은 경험이 없었기에, '무관심, 미성숙한채로'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일본인의 미성숙은 '국민 스스로가 국가의 운명에 대해, 고민하거나 영향을 미칠 생각도 외면하고, 가끔 광기에 빠져 폭주하는 경향에 무비판적으로 맹종해버리기 때문에' 무섭다.)
반면, 우리나라는,,,, 짧게는 아쉬운 선택도, 비겁한 선택도 해 왔으나, 일제를 극복한 다음부턴, 꾸준히 역사를 민중이 바꿔왔다는 자부심의 학습이 집단의식속에 공유되어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집단 정치의식은 '한참 성숙해가고 있는 청년'같다(가끔 시행착오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자부심과 안도를 가지면서,,,, 급속한 사회 고령화에 발맞춰, 갑자기 경직되어 착오의 길을 계속 선택하지 않길,,,,, 도무지 답이 안보이는 '일본만화의 역사인식'을 보며 애써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