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성당
1. 역사의 발전?
헤겔은, '역사의 발전이란 곧 자유가 확대되는 과정'이라 했다.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유확대의 상승곡선이 변곡점없이 계속 상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로마시대의 종말부터, 르네상스까지 근 천년간의 중세시대는 '암흑시대'라고 불린다.
로마시대동안 정착 확산되어온, 사회운영체제(국방, 치안, 경제, 정치 체제)가 무너지고, 게르만민족의 유럽지배로 재편되면서, 로마시대때 가꿔온, '대국 치안 안보체제'를 운영할 역량을 완전히 상실해버리자, 중소영주 중심의 자의적 봉토운영이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대다수의 농노-도시빈민층은 영주에게 정치적, 경제적은 물론, 생존과 안녕이라는 기본적인 권리도 종속되어 버린다..
그리스-로마시대의 국부와 안정이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를 운영했던 건 아니고, 특히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둔 사회운영이 이루어졌다하더라도, 그 당시에는 '시민'계급이 존재했고, '시민'-'귀족'-'왕정'의 삼두 견제 속에서 국방과 치안이 작동했다는 걸 전제로 한다면, 중세는 빈곤과 생존위협을 받는 악화가 일반화된 시대였던 셈이다. 그런걸 보면, "역사가 항상 진보"하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2. 중세시대의 한 자유인의 열망
이런 '중세'를 담고 있는 소설, 알데폰포 팔꼬네스 저, <바다의 성당>을 읽었다.
중세 왕권과 교권의 폭압과 충돌, 영주의 전횡이 일상화된 14세기 스페인, 오늘에도 바르셀로나에 서있다는 santa-maria de mar(말 그대로 '바다의 성당')이 배경이다.
스페인 까딸루냐의 농노 베르나뜨와 프란세스까의 결혼식장, 갑자기 들이닥친 영주 일행은 농노의 신부에 대한 초야권을 들먹이며, 행복한 인생을 파탄시키고, 괴로운 순간을 잊으려 노력하는 부부와 갓난애(주인공 아르나우)의 생명까지 위협하자, 아버지 베르나뜨는 자유를 찾아 도시 바르셀로나로 고난,인내로 점철된 탈출을 감행한다.
탈출 성공의 기쁨도 잠시, 바르셀로나에서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시민권없는 무적(無籍) 시민으로서 억압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던 부자에게 여전히 가혹한 운명은 비극적인 이별을 선고하여, 결국 아버지는 처형되고 그 시신도 모욕당한다.
고아로 남아, 고난 속에서도 '바디의 성당'을 짓는 '짐꾼'으로서 버텨내던 아르나우에게도 행운이 찾아와, 그는 과거의 억압자(개인과 제도)에게 복수하며 진정한 사랑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이 책에서'바다의 성당'은,,, 비록 권력도, 부도, 신앙을 앞세운 전횡권도 없는 '짐꾼'에 불과하지만, '노동력'을 바쳐 성당을 짓는 행위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사는 '짐꾼'들에게 '이 <바다의 성당>은 우리의 성당이며, 내 운명은 어떤 권력자의 것도 아닌 내 자신의 것'이라는 피맺힌 긍지의 상징이다.
이 소설 속에서 중세로 묘사되는,,, 영주와 농노 간의 불평등, 핵폭탄같은 페스트, 유태인 핍박, 종교재판소의 잔혹한 이단 신문, 빈발하는 전쟁과 짓�히는 생명들을 보면,,, 정말 인류가 그리 멀지도 않은 그 천년동안 "그토록 스스로의 역사를 방기"할 수도 있다는 경고라 느껴진다.
(그렇기에, 현재 확보된 자유의 향유도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여전히 인류의 미래는 치명적인 비관과 위태로운 낙관, 그리고 절묘한 우연의 아슬아슬한 균형상태에서 오간다는 아픈 진리,,)
3. 아들의 복수, 아버지의 희생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슬픔과 분노, 통쾌함을 자극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아들 아르나우이며, 고난을 견디고 스스로의 존엄함을 지키려 애쓴 그에게 보답으로 돌아온 부와 권력을 손에 쥐고, 폭압자들과 불온한 제도에게 복수하는 순간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라 하겠지만,,
읽은지 상당한 시간을 되새김한 지금, 더 강하게 가슴에 남는 건, 아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 인내하고 투쟁하고, 바라는 것 없이 커가는 모습만으로도 감사하면서도, 마지막 순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할 도덕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를 고발하여 죽임당하는 아버지 베르나뜨였다.
스스로의 욕구를 위해 천방지축하기 보다는, 나와 인생이 연결된 이들을 위해 참고 희생하는 것에서도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다그치는 요즈음에 더욱 가슴을 치는 모습이었다.
“아들아, 이 아비는 너의 자유를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