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편력-네루
예전엔 지루해서 끝까지 못 읽었는데, 지금은 흥미롭게 읽어진다. (세계사를 3권으로 압축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요약'이고, 그 '요약'을 흥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역사 지식이 필요했던 듯)
1권을 읽고, 이 책은 좀 감상을 메모해 둬야 할 듯하여 간만에 긴 독후감.
0. 이 책의 가치는 네루라는 아시아인,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이 '딸'에게도 들려줄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 3권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턱도 없이 짧은 책 속에 인류사를 고대부터 지금까지 일별한다는데 있다.
독자가 관심있는 자기 나라 역사, 유럽, 르네상스, 종교, 산업혁명, 몇몇나라의 독립사 등 특정 테마의 역사를 취향대로 깊고 얕게 섭력했을 수 있겠지만, 세계사 속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는 전혀 다르고 특히 동양인의 관점에서는 '이제 제대로 보게 된'듯한 느낌도 든다
세계의 역사는 당연히 시대의 종적으로, 또 멀고 가까운 나라끼리 횡적으로 닿아 있고, 출렁 출렁 흐름에 따라 잔잔히 또는 폭풍처럼 변화해왔다. 예컨대..
- 몽골의 통일과 폭풍같은 팽창이 이란지역 국가의 서쪽으로 '도망'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동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유럽은 허겁지겁 봉건제에서 탈출할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고
- 아랍의 지배에서 막 벗어난 신생국가 스페인은 유럽에서 후발주자였기에 오히려 신대륙으로 진출, 부를 이루지만, 이로 인해 남미의 멕시코, 잉카, 아즈텍 문명은 대재양을 만난 것처럼 완전 붕괴
- 지금 역사는 제국주의의 최대 팽창이 대충돌(1,2차 대전)로 이어지고, 잠시 소강기, 그러나 그 잉여 에너지의 응축(국제자본)과 팽창욕은 사상 최대이기에 어디로 굴러갈지는,, 참,나,,
각 국가 공동체 / 시대 상황의 에너지가 파괴적으로도 흐르기도, 부패하기도, 순탄하게 흐르기도 했다. '세계사에 대한 편력'이 주는 통시적 흐름은 이걸 가르쳐 주고 있기에 감사하다
1. 인류가 역사로 갖고 있는 4000여년의 시간이 '과거'가 아니라, '진행형의 현재'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아주 먼 시간의 일이라도, 분명 지금 이순간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귀추가 궁금한 기류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 예컨대,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역사를 중국의 강한 영향력(지배력) 속에 있었다. 앞으론, 현재 해양세력(미국/일본)-대륙세력(중국/러시아) 의 각축전 속에서 우리는?
-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난 이후, 기술력이 발달하여 잉여자본이 누적될 수록, 직접 생산하는 자 와 이를 지배하는 자 사이의 불균형은 이미 발생한 순간, 절대적이었다. 착취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었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윤리적 관념이야 요새 생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제 자본의 지배력은 인류사에 유래없는 킹왕짱 수준. 앞으론?
그렇기에 역사는 과거사가 아니라 진행형의 현대사이다. - 최근 재밌게 읽고 있는 이덕일님의 역사서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덕일님에 대한 증오와 갈등도 뜨겁다. 거의 '반대당', '이해침해자'를 바라보는 격렬한 증오를 받고 계신 듯,,, 이러니 '역사의 해석'이 지금 이순간의 이해관계의 표출인게지
역사는 그렇기에 '과정을 읽는 학습'이다. 마침 오늘이 광복절인데,, 아직 우리 나라도, '독립이 완성되지 않은 진행형의 역사'아닌가? 결국 '대한민국의 독립'도 '통일'도, 어떤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 서 진행되는 역사를 살고 있는 셈다.
2. 1권은 고대문명부터 대략 17세기까지 바쁘게 묘사한다. 코리아는 중간 중간 짧은 '조용하고, 중국의 영향권-종속을 왔다갔다 하다가 현재는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로 몇번의 언급이 고작. 그래도 단계별로, '그 때 코리아는 이랬었다'라고 언급될 실체를 잃지 않고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스스로 으쓱해도 되는것인지
혹은 이렇게 '듣보잡', '세계사 속의 만년 있으나 없으나 고작'이었던 국가가 이쯤 커진 것에 스스로 긍지를 가져도 되는 것인지, 웬걸 미묘
3. 네루는 유럽/서구 세력이 아시아를 굴복시킨 것이 세계사 속에서 극히 최근이며 오래가지도 않을(쇠퇴하기 시작할 - 글쎄?) 기류로 보고 있다.
특히 중세 이후, 유럽이 봉건제 / 종교탄압 / 미신 / 비과학 / 영주-기사-종교집단의 민중 착취/소국간 분쟁으로 지리멸렬할 때, 아시아는 수준높은 국가체제, 문화, 경제적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
그런데, 네루의 역사 해설에서 ‘공동체의 활력’, ‘에너지’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즉 유럽은 미숙하고 흉포했지만, 활력을 갖추고 밖으로 뻗어나가고 있었고, 중국,인도 등 아시아의 대국은 수준높고 안정되었지만, 그런 활력은 쇠퇴하고 있었다는 식이다.
- 인도의 카스트 제도, 중국의 안정적 질서는 '뭘 해도 거기서 거기'라는 한계로 작용, 진취성을 잃어버린 것
- 또한 갈등이 사라지는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교회로 대변되는 사상 독재는 언제나 시대의 활력을 갉아먹고, 종교적 관용과 국력/진취성은 거의 비례관계,, 였음이 세계사적으로 분명.
그런 활력의 본질을 뭐라 해야 좋을까? 공동체의 욕망? 구성원의 욕구? 신분상승이나 부에 대한 갈증? 모험심? 용기? 어쨌든, 인상깊은 관점이고, 쉽게 설명되지 않은 본질에 가까울 듯 하다.
- 우리도 ,, 갈수록 사라지는 자수성가 성공인,, 강남 출신 지도층 세습 고착, '종북, 빨갱이'등에 대한 사상적 경직, 기독교의 바람직하지 않는 속세 권력 강화,, 그리고 물론 이런 것과 다 이어져 있는 부와 권력에 대한 부패가 만연해서는, 상승 전망이 후덜덜,,
4. 역사서를 읽다보면, 인간성에 대한 상념이 자주 든다.
인간은 이기적인가? 탐욕스러운가? 무책임하고 끝도 없이 자기 욕심만 채우면 그만일 뿐인가? 타인을 배려하고 가치를 위해 희생하고, 선한가? 그런 질문들에 대해 사례로 답을 들려주는지도 모른다.
현재까지 내 과문한 의견은, ‘인간의 탐욕은 본성이나 극복할 수 있다.’ 정도랄까
탁월한 자들은 극복하기도 하며, 공동체로의 인류집단은 조금씩 진보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 변곡점, 위기 때 삽시간에 형편없이 후퇴하기도 하고, 한번 주저앉은 공동체의 집단 의식이 다시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못한다. 그렇기에, 역사를 보며 뭔가 하려는 사람은 희망은 갖되 결코 방심하지는 말아야 할 듯
(어느 나라나 위대한 인물/집단의식이 한 시대를 꽃피우기도 하지만, 탐욕에 치우치는 사람이 금방 열매를 다 따먹고 주저앉히기도 십상이더라.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보더라도)
1권 메모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