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현상과 대응

(수사구조개혁논쟁중) 필부의 용기에 대하여

미리해치 2010. 6. 8. 15:13

1. 나의 대학, 직업 선택

 

처음 경찰을 직업(정확하게는 경찰직이 예정되어 있는 대학)으로 선택할때 날 사랑해주는 거의 모든 사람이 반대했다.

 

얼핏봐선 아닌듯도 보이나, 나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느끼듯, 난 대단히 소심하고 뒤로 숨기 좋아하는 성격이다

 

또, 나만의 좁은 관심사에 편향되어 주위 분들께 사람노릇 못할 때도 다반사...

 

그런 내가 19살에 경찰을 직업을 택하기로 마음 먹은 건, 지금 생각해도 어떤 심리적 기제였는지 여전히 명쾌하진 않다

 

그러나, 아마도, 소심한 만큼,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타협하고 싶지 않고, 또 그런 작은 주장이 세상의 생계로부터 위협받지 않을만큼의 자유'를 가지고 싶었던 것 같고, 지금도 그 마음이 0.1% 쯤은 존재한다.

 

합리성의 관철과 그로 인해 훼손되지 않을만큼의 의식주의 자유,,,,,

 

 

2. 너무도 멀리있던 합리,, 

 

'많이 좋아진 시대'에 경찰서근무를 시작했고, 대충 돌아가는 뽄새를 알면 알수록, 답답 또 답답이었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투명하지 못한 금전이 유통되는 것도 매우 불편했고('분노'까지는 하지 못해 부끄럽다)

 

한편, 또 그런 금전들이 알량한 권력을 조금 더 가진 쪽으로 흐르는 것도 어이없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출입기자들이 단합대회를 한다고, 형사반마다 수사비를 몇십만원씩 걷어가는  것에 그리 분개할 시간에, 알지못하는 곳에서 내 동료들이 그런 비슷한 일을 더 약한 이들에게 '권유'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부끄러워했어야 맞다

 

 

3. 기묘한 폭발,, 그리고 희망,,

 

기자에 대해 잠시 언급했지만,, '언론'은 그 선한 취지에 불구, 우리나라에서 경찰과의 관계는 아주 좋지 못한 방향으로 관계맺어져 있어,,, 참 불쾌한 기억은 이래저래 많다.

 

99년 한 방송국 수습기자가 술에 떡이돼, 경찰서에서 경찰관 폭행, 기물파손, 욕설, 폭언, 방뇨하는 것을 참다참다 못해(정말 어지간하면 하지 그렇지 않을텐데,,), 어린 기자를 공무집행방해로 입건하려 했고,

 

결국 그 다음날 아침, '어르신'들이 싹싹 빌며, '감없는' 형사들을 인사발령하는 일이 인터넷을 타고 번지기 시작했다.

 

나로선 너무도 눈에 보이는 그 장면에, 화가 치밀어, 방송국 홈페이지 등을 기웃거리고, 훈계도 해주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느낀 것이 '의외로 나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정말 당시 화가나서 참을 수가 없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모였고, 그 당시를 전후해 불멸의 동아리 '폴네티앙'가 태동하는데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사건으로 인해, 해당 방송사가 아예 소설을 써가며 경찰행정을 선정적으로 매도하고, 경찰청장이 그 방송사를 찾아가 석고대죄를 했다는 UB통신도 있지만, 확인할 길 난망,,)

 

 

4. 굽이 굽이 사건과 격류속에서,, 심금을 울리는 사람들,,,

 

경찰 경력 많지도 않은데 그래도 많은 일을 봤다. 

 

감히 상상도 안될만큼 엄혹했던 시절 선배님들이 '경찰민주화선언'을 중앙온론에 주창하며, 주도했던 분은 남산에 끌려갔다온(남산에 파견근무한 것이 아니라, 끌려갔다 오신 분은 그분이 유일하지 않을까?)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고되고,,

 

수사권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어떤 형사과장님은 검찰청 파견 형사들을 철수시켜버리는 것도 봤다.

 

어떤 동료가 인터넷에 청장의 리더쉽을 비꼬왔다가 해고되고, 그를 돕자는 운동이 대거 일어나서 결국 본직된 것, 경멸을 재생산하는 언론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직원들,,,

 

법적 근거없는 소재수사 철폐운동,, 검찰의 야욕이 발현된, '검사직무대리제' 개정 무효화,,,,

 

고비고비마다, 경찰행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이 관철되거나 좌절하는 모습들,,,,

 

그 흐름은 05년 수사구조개혁운동과 함께 절정을 이뤘다.

 

내 깜냥에 비해, 너무나 많은 훌륭하신 분들을 뵐 기회가 분에 넘쳐, 참 많은 훌륭하신 분들을 만났다.

 

물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좋은 게 좋다고 살고 계시거나, 냉소적으로 조직에 대해서는 어떤 바람도 없는 분들도 있음을 알고 있고, 또 '본인의 십년대계를 위해 조직의 백년대계를 팔아넘기면서도 그것의 합리화에 급급'하신 분들도 봤다.

 

그러나,,

 

냉정하고 치밀한 두뇌로 경찰발전을 치밀하게 기안하며 느린 걸음을 한발한벌 준비하고 계신 엘리트들,,,

 

뛰어난 능력과 열정으로 맡은 바 직분에 200% 성과를 거양하며, 현장에서 국민과 경찰에 기여하고 계신 분들,, 그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의 염'을 표한다.

 

하지만, 진정 나를 부끄럽게 하고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주는 분들은,,,

 

검찰을 비롯한 타 정부기관의 경찰경멸·무시와 언론, 국민의 오해·불신에, '그건 아니라고' 분노와 슬픔을 표출하며 한 개인의 이름으로 나서길 주저하지 않는 분들이다.

 

그분들을 볼때마다, '평범한 이들의 분노'들이 만들어가는 서글픈 희망을 본다.....

 

 

 

5. H서장님,,고독하고 작은 몸부림,,

 

대전지역의 어느 경찰서장이 검사의 피의자면전인치요구를 거부하고, 직접 내방하여 면답하길 요청했다가, 기소될 위기에 처했다.

 

그분은 평생, 검사의 '수사지휘'를 빙자한 부당한 지시가 얼마나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고, 국민과 경찰을 이간질시키는지 몸으로 보여주길 주저하지 않으신 분이고,

 

이번에도, 또 하나의 부당한 관행이 고착되는 것에 대해, 합리적으로 절충안을 제시한 것임에도, 검찰의 태도는 '내 말을 듣지 않았기에 너를 기소하겠다'는 초권위적 반응의 희생양을 자처했다.

 

공무원, 조직의 일원으로 '현재의 관행이 잘못되었다'고 의견을 제기하기란 쉬운게 아니다.

 

세계유일 우리나라처럼, 경찰이 검찰의 말을 듣지 않으면 전과자가 되는 세상에서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 현실에 참담하고, 또 그 항변이 고독해질 수 밖에 없는 경찰의 현실이 서글프다.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게 옳은 것'이라는 지당한 발언은, '전략적 대계를 위한 침묵', '집단의 품위(?-개뿔, 60년간 종으로 살아온 집에서 무슨 품위를 찾는가)'를 내세우는 간부집단에서, 외롭고 또 외롭다..

 

사안의 경중을 떠나,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평범한 필부의 분노와 서글픔이 왜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고, '전략적 대계, 품위있는 침묵' 속에 묻혀야 하는가?

 

왜 우리 모두는 스스로 평범한 필부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전략가를 빙자한 훈수꾼'으로 내려앉아 '분노와 노여움'을 잊어가는가,,,,

 

나의 경박함, 나의 분노, 나의 슬픔, 나의 철없음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나는 그러한 나를 긍정한다..

 

 

 

뱀발.

 

어제 뉴스에서 위 글에 출현한 '난리 깽판을 치며 형사들을 모두 날려버린' 그 기자가 '환경파괴를 고발'하는 보도를 봤다. 

 

며칠전엔, 절차를 결락한 소년범의 석방에 대해, '수사절차의 염결성'을 운운하며 평생 잊지 못할 인연을 맺은 검사가, 부당한 긴급체포를 했고, 이로 인한 피해자의 반항은 정당방위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은 보도를 봤다.

 

나 역시도 부족한 인간임에도, 현장에서 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역겨운 소리를 하며, 법규정을 운운했을지, 낯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여전히 그닥 나아지지 않았고 기만에 찬 현실임을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것 같아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