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현상과 대응

(수사구조개혁 논쟁중) 그저 부끄러움 없는 사랑을 위하여

미리해치 2010. 6. 8. 15:12

서프라이즈에 쓴 마지막 글이다. 

 

일부 고정 필진과 자발적 네티즌에 의해 운영되는 서프라이즈는 정치색이 강하기 때문에 공무원으로써 글을 쓰는 것을 권장할 만한 사항은 아니나,

 

수사구조개혁 논의가 기존 매체에서는 결코 심도있게 진행되지 못하고, '경-검간 권력다툼'과 '혼란'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글을 쓰게 되었으며,

 

이후 많은 동료들이 대거 달려들어, 논의를 촉발시켰다.

 

지금은 거의 사그러든, 슬픈 과거의 논쟁이 되었으나, 그때 촉발된 논의는 '사법개혁네티즌 연대'라는 작은 NGO를 출범시켰고, 활발히 뛰었다.

 

잠시 소강상태에 있으나, 좋은 토양을 만났을때 그때의 잠재된 에너지가 다시 분출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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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부끄러움 없는 사랑을 위하여(05. 6. 27, 서프라이즈)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 오래된 기억, 트라우마


오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언제나 똑같이 걷던 그 길 언덕위에 시커먼 헬기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옆에 지나던 리어카에 실려있던 것은 아마도 거적이 덮여진 시신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 손에 이끌려 올라간 마을 뒷산에서 본 것은 저 먼곳에서부터 밀려들어오던 군용 트럭이었다....”


80년 5월 어느날의 남쪽의 어느 도시 풍경입니다.  삼십대 초반 청년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기억이 이와 같다면  이건 역사, 과거史가 아닙니다.  그저 몇 년전, ‘조금 지난 現在의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 조차 터부시하고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밝혀졌다’는 지금도, 그날에 대해 모두가 같은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역사,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특정한 사안에 대한 견해에 불과하다”   -브루스 커밍스-

 


그다지 멀지도 않은 때입니다.  한 도시를 군대로 피칠을 하고도, 달콤한 인생을 향유한 이도 있고, 피해를 당하고도 쉬쉬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딘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었을까요?  ‘나라가 그들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돈, 권력, 폭력,, 이 그들의 것이었고, 무엇보다 ‘법’이, 그들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 CODE, 법의 지배자


인터넷 법이론의 대가, 로렌스 레식의 글에서 인용합니다.  ‘사이버공간의 기술적 배치와 설계, 즉 코드의 설계가 바로 그 공간의 정치적 성격을 규정짓는다...


코드를 설정하는 것, 그것이 가치내포적인 규칙이던, 기술적인 구별이던, 모든 코드의 설정과 운영은 모두 정치적인 것이다.’


코드,, 현실공간에서는 ‘법’이죠,,,, 가치중립적일 듯한 법, 그저 기술적인 규칙에 불과할 듯한 법은 ‘정치의 연장’, ‘정치의 기본 전제’입니다.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할때, 공개운영, 로그인 요구, 접근수준 구별,, 하나하나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적인 게 아니죠.  사이트 운영자의 편향된 가치,, 정치적인 우선순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생명을 좌우하는 즉물적인 힘(군대)을 기반으로 권력을 획득한 이들이 다음 수순으로 ‘법’의 기술자인 검찰을 끌어들인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유신을 거치며 검찰은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시민의 항변권인 재정신청권을 ‘직권남용외 2 가지 범죄’로 제한시키며,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만들었습니다.


5. 16 세력이 주축이된 겨우 22명이 참여한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밀실개헌을 통해 "검사만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전세계 유래없는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5공화국 들어 47명의 지검장 이상 검사들이 차관급으로 격상되고, 검찰은 창설 이후 8.35배의 규모로 조직을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3. 그렇다면 경찰은 법의 객체였던가?

 

이 어두운 기간 동안 경찰은 그저 법의 객체였던가요?  “경찰이 언제부터 약자였다고 이제와서 하소연하는 것 보면 신물이 난다”는 비난을 아프게 듣고 있습니다. 


그렇죠.  경찰도 그렇게 설정된 법의 객체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법’이 작동하는 현장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과오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이를 잊어서도, 용서받아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그 과오의 작동방식은 어떠했던가요,,,? 권력의 핵심과 법집행의 첨병인 검찰, 그리고 손발이라는 경찰이 한몸으로 ‘유착’하며 작동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역사가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경찰’과 ‘검찰’이 주체권한도 없이 ‘상명하복-지휘’라는 이름으로 유착하며 서로의 이름뒤에 숨지 않길 바랍니다.


서로가 거리를 두고 국민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긴장적 경쟁관계’로서 자리매김해주길 바랍니다.


 ‘경찰이 수사주체가 되면 피곤하다.  검사가 지휘했다고 하면 다 넘어가는데 왜 난리냐’라는 경찰관들과,

 

‘검사가 바람막이해주면 서로 좋지 않냐?  경찰이 수사잘하면 우리가 칭찬도 주고 상도주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검사의 짝짜꿍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국민에게 충성하지 않고 검찰에게 충성하는 경찰관일수록 현재 경-검의 수사권 조정 논의를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오랜 굴종의 근성을 버리고 국민을 보며 서로 바로 서길 바랍니다.

 

 

4. 문제는 경찰의 자존심일까요?


혹자는 묻습니다.  “그냥 니들이 기분나빠서, 자존심 상해서 그런다는 것 아니냐?” 구요

 

물론,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더 이상 굴욕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주장의 원인이 된다는 게 잘못은 아닙니다.


참으로 유능하고, 기품있던 선배들이, ‘이렇게 일상화된 모욕을 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다’며 수사현장을 떠나 허허롭게 살고 있습니다.


탁월한 선,후배들을 견인할 수 있는 토양으로 바꿔, 저같은 쭉정이는 배겨나기 힘든,, 훌륭하신 분들과 함께 일할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저 자존심, 그게 아닙니다. 

 

 

5. 왜곡되어 가는 권력의 제자리 찾기


현장에서 검찰을 바라보면 블랙홀이 생각납니다.  압도적인 질량으로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다가 함께 파멸하는,,,


권력이란 게 무엇인가요?

‘의도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힘’이며, “다른 이의 의지에 반하여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는 힘”입니다. 


청와대의 의지가 스며있다고 느껴지는 사개추의 공판중심주의로의 개혁안과, 경찰 수사권 조정 주장의 진퇴양난을 해결하기 위해, ‘권력형 비리’와 ‘지역토착비리’ 집중수사를 기획하는 이들은 이미 권력입니다.


檢亂으로 표현되는 평검사회의 이후에도 사법개혁안에 대한 의지가 무너지지 않는게 관측되자, 청계천과 오일게이트로 전선을 확대해가며, 쇼당을 강요하는 이들은

 

이미 ‘자신의 의지로 여론을 형성시키며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현재의 권력입니다.


이 권력을 기반으로 하여 범죄인구 대비 검사 숫자에서, 영국의 6.5배, 일본의 4배의 조직을 가지고도 기구를 더 늘려달라고 외치고,


조직 증식을 위해, 좀 더 많은 시민의 실수로 범죄로 입건하라고,,박차를 가하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 과연 어떤 가치의 동일점을 발견하고 제가 그들의 지휘에 감복하며 따라야 할지 점점 알수가 없습니다.

 

6. 이미 늦어버린게 아닐까?

블랙홀처럼 늘어나는 검찰의 파괴적 권력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제는 너무 늦어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관련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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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일보 2005-06-23  :  여당이 눈치보고 있다.: 與 “수사권 조정, 檢눈치 보여…”


검ㆍ경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수사권 조정문제를 두고 열린우리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대선과 총선의 공약이었지만 검찰의 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시대적 흐름은 경찰에 수사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공약인 만큼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맞는 방향”이지만 검찰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고민 때문에 검찰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을까 고민스럽다거나


솔직히 집권 후반기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권한 분산이 맞지만 어느 수준에서 어떻게 조정해야 할 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래서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지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2) 어느 국회의원의 변 :


"(현재 발의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당론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초선의원인 나도 장담 못하는데.. 털어 먼지 나지 않은 자 누구 있을까?  검찰이 먼지털이 쥐고 흔드는데..."



3) 6. 21 김승규 법무장관의 법사위 발언 :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와 관련, “지금 단계에선 국민의 문제가 아니라 검찰과 경찰에서 할 문제이고 국회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최근 검찰은 국회 법사위원들에게 낸 보고서에서 “경찰은 식민침탈 도구” “경찰 파쇼” 라는 등으로 원색 비난한 것에 대하여 언급하자

 

김 장관은 “(검찰 문건은) 국회 요청으로 비공개로 보낸 것으로 우리(검찰)는 보안 의식이 있는데 국회의원들은 뭐…”라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의원에게 제출된 자료는 국민에게 제출된 자료와 같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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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독립헌법기관,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국회의원의, 의사표현마저도 저어하게 만들고..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라고 평가받았던 법무부 장관조차 다른 국가기관 행정조직을 공식적으로 비방한 문건을 국회에 제출하고도, ‘보안의식이 없다’고 불쾌해 하는 것이...

 

현재 검찰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인식의 지평,, 에 대한 현 주소입니다.


너무 늦어버렸을까요?  이들에게 정당한 제 자리를 찾아주기엔 이미 많이 지나왔을까요?



정상국가의 공무원으로서 국민을 섬기며,, 살고 싶은,, 이의 바람이요, 걱정입니다.


저의 이 바람이,, 언젠가 퇴직할 직장만을 위한 이기주의가 아닐까,, 매순간 되뇌어 봅니다. 


나는 한사람의 경찰으로 내 조직을 사랑하고 싶지만, 그 사랑이 국민과 국가를 섬기는 마음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는 사랑이길 언제나 바랍니다.


부끄럽지 않은, 겸손한 사랑을 가질수 있길 기원하며 네그라소프의 시 구절을 되뇝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