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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호 : 스마트치안, 경찰데이터 A&R을 위한 공부와 연대
마더, 욕망과 관계, 짊어지고 사는 굴레들 본문
(주의! 이 감상문에는 많은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아직 영화를 안보신 분들은 보시고 읽기를 권합니다.)
1. 영화 <마더>를 봤다. 봉준호감독의 영화가 항상 그렇듯, 언제나 이야기 속에 많은 함의를 넣어 던지는 질문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치도 못한 새로운 시선을 느닷없이 내보여, 충격을 주는 질문은 아니다. 가슴 깊은 곳에선 알고 있지만, 덮여두고 있었던, 그러나 아마도,, 진실에 가까울,, 세상의 모습을 묻는 물음들이었다.
기자(많은 이들이 그렇듯)는 보고싶은 영화, 주제가 여러겹으로 깔린 영화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회피한다. 언젠가 보게 될 경우, 선입견에 지배되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는 이 영화를 '무고하게 살인누명을 쓴 어머니의 결백투쟁기'인 정도로만 알았고, '아들을 구하기 위한 절대적 사랑과 희생'이라는 '모성'에 대한 경배일거라 생각했다. (설마 봉감독의 영화가 그럴리야 없건데^^;)
하지만, 웬걸, <마더>는 인간의 욕망-모성(母性)도 하나의 욕망이지-들에 대한 노골적인 주목이고, 그것이 부딪히면서 어쩔수 없이, -누구도 일부러 의도하진 않았던-파극으로 치닫는 인간사 비극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2. 반전의 반전, 그럼으로써 진실에 대한 재강조
누구나 처음엔 '도준'은 살인의 '누명'을 썼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가 처절한 투쟁으로 그것을 밝혀낼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반전을 기다리는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여 다시금 반전하면서, '그게 진실이야'고 아프게 찝어준다.
'도준'은 '아정'을 죽였다. 그리고 아들의 결백을 밝히겠다는 엄마의 선의에 찬 결연한 투쟁들은 아무 성과도 없이, 오히려 엄마 역시 아들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목격자를 죽이는 살인으로, 그리고 또다른 무고한 청년의 누명을 묵인하는 것으로 세상의 선의를 배반한다.
(아들의 누명을 밝혀줄꺼라, 엄마가 엄청난(?) 위험끝에 입수한 증거(골프채), 그러나 이 노력은 허사이며, 결국 무의미하다)
이렇게되면 결국 신성할 것 같은, 세상을 모두 사랑할 것 같은 '모성'이라는 것은, 이기적인 '애정, 욕망'일수밖에 없다.
3. 인간의 욕망, 규범, 죄
마더의 유명한 첫장면, 벌판에서 김혜자가 추는 막춤(한국의 어머니-김혜자씨가!)은 처음부터 관객을 몰입시킨다.(일단 벙찌니깐?^^)
그러나, 서술구조상, 이 장면은 미리 등장하는 '클라이막스'다. 엄마는 아들의 결백을 밝혀줄 것이라 믿은 진범(혹은 목격자)이 오히려 아들의 범행을 본 유일한 목격자라는 것에 경악하고, 그를 죽여버린다. 그것도 '놀람끝의 실수'가 아니라, 확고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김혜자님께서, 파이프렌치로 남자의 뒤통수를-그것도 수회!-까시다니) 살해한다.
충격속에 야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텅빈 들판에서 멍하니 서있다가 추는 엄마의 막춤, 슬프고도 광기에 차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유로워보이기도 하다. 엄마는 자신의 욕구-아들을 지키고 싶다는-에 충실하기 위해, 죄를 지어버린 것이다. 그리곤 그 행위로부터 자신을 인정하고 충만해보인다고 느낀다면 다소 과한 해석일까?
(도준은 살인후 충격으로 엄마에게 안기고, 엄마는 모자란 아들을 안고 잔다. 영화는 빈번히, 모자간의 관계에 '성적코드'를 덧씌워, 숭고하게 인식되는 '모성'도 '애욕(혹흔 성적인 의미가 내포된)'임을 보여준다.
욕망의 존재인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오히려 '죄'를 지으면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고, 자유로워 진다. 하지만, 공동체안의 인간은 그 욕망의 발현이 미치는 폐해에도 괴로워한다. 인간은 결국 그 양자의 딜레마를 견디고 살아야 한다.
4. 어쩌면 '죄'만큼 무거운 '타인과의 관계'
극중에서 엄마는 2번의 죄를 범한다. 하나는 바보 아들의 5살때 동반자살하기 위해 먼저 농약을 먹인 살인미수이며, 아들 범행의 목격자를 죽인 살인이다. 그러나 엄마는 자신의 그 행위들을 긍정한다.
(극중 유일한 선한 인물-사진관 아줌마-에게 '그때 그라목선을 먹였어야 했는데 내가 맘이 약해서 약한 걸 먹였거덩'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장면과,, 살인 후 춤추면서 자신의 죄와 화해하는 듯한 모습에서 읽히듯)
그러나, 엄마를 더욱 절망하게 하는 것은, 그 2번의 죄 자체보다는, 자신의 죄를 '타자'(他者)-그것도 가장 사랑받고 싶어하는 대상인 아들-가 알게 되는 순간이다.
(기자에겐 가장 소름끼쳤던 장면은 누구의 살인장면이 아니라, 도준이 '엄마, 생각났어, 5살때 엄마가 나 죽이려 했지?'라고 말하는 장면과 그것에 엄마가 절규하는 억제된 장면이었음)
그리고 영화의 결말에서, 도준이 엄마에게 증거품인 침통을 몰래 돌려줄때, 그 때 엄마는 또 한번 절망한다.
또한 엄마에게 남은 삶이 무거울 수 밖에 없는 건, 이젠 도준 자신 역시 무고하지 않고, 살인자임을 언젠가는 기억해낼 수(5살때 기억을 되찾듯) 있다는, 그리고 그것을 엄마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또 아들이 그걸 아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죄를 남이 알고 있다는 것', 또 '타인의 죄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죄를 알고 있다는 것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관계는 '죄 자체'만큼, 어쩌면 그것보다 무겁다.
5. 그러나 그런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
미셀우엘백의 소설 <미립자>에는 '인간이 혼자임을 절감하는 순간은 고통을 느낄때이다. 그리고 자신이 사회적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은 거짓말을 할때'라는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다. 아무리 선의로 위로해도, 그래서 견딜 힘을 다소 보태줄순 있을지언정,,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외로운 본인의 몫이다. 그리고 자신의 죄,고통,기쁨,이익,욕망, 그 무엇을 감추기 위해서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며, 그 거짓말이 통하는 걸 보면서, '사회안에서의 나'를 느낀다.
영화 속에서 엄마는 처음과 마지막 장면, 두번의 춤을 춘다. 첫춤은 자신의 죄, 외로운 고통속에서의 춤이며, 두번째 춤은 아들이 이를 알게된 괴로움 속에서, 그걸 잊기로 하고(괴로움을 잊는다는 혈자리에 침을 놓고), 관광버스 안에서 동네아줌마들과 막춤을 춘다.
잊고, 짊어지고, 죄있어도 없는 척, 괴로워도 안 그런척, 스스로와 타인을 속여가며 살자는 듯, 남들과 춤을 춘다.
그것이 사람의 삶이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엄마 김혜자의 막춤을 상대하는 또 다른 동네아줌마들이라고, 왜 가슴속에 말못할 무거운 업보와 고통, 죄들이 없겠는가? 다들 짊어지고, 함께 춤추며 사는 것이지)
6. 세상에 대한 희망보다 낙담들
봉준호 감독들의 전작도 분위기는 무겁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나름의 애정과 신뢰도 조금은 있었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는 살인범을 쫓지만, 타인을 위해하지 않고, 용의자 박해일을 몰아붙이다가도 박해일 역시 억울한 희생자일 가능성이 있기에,, 그에게 애정을 보인다.("밥은 먹고 다니냐?")
<괴물>의 주인공들은 약자들이지만, 유괴(괴물이 유괴범이지 머)된 딸을 찾고자 가족간에 연대한다. 그리고 죽은 딸대신 돌아온 고아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마더>에선 그런 시선이 더욱 냉엄해진 것 같다. 변호사, 경찰로부터 무시받는 약자인 엄마가 또다른 약자(고물상할아범)을 죽이고, 아들의 죄를 대신 누명 쓴 다른 약자(봉팔이)의 처지를 방관한다.
한편, 등장하는 다른 이들 역시, 자기 성욕(동네남자들-고물상할아범도 아정과 섹스를 위해 빈집에서 기다리다 범행을 목격한 것이지), 폭력성(진태, 고삐리들)에만 솔직하고자 타인들을 상처입힌다.
더 나빠지고 살벌해진 세상사를 반영하는 것인지, 씁쓸하다.
한편, 소시민에 공무원, 가장(家長), 사소한 욕망의 충족과 결핍에 일희일비하는 부박한 영혼의 기자는,, 봉준호감독이나, 앞서 인용한 미셀우엘백같은 작가가,, 세상에 대한 냉혹한 눈(그것이 진실일지라도)을 갖고도 어떻게 타인과 웃고 어울리며 살아가는지 짐작되지 않는다.
7. 죄와 진실을 다뤄야 하는 사람의 의무
기자는 수사분야에서 일하는 경찰관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볼때마다 지향해야 하는 자세의 무게를 느낀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 때문에 죄를 짓는다. 경찰관 스스로도 약하고, 악하면서도 타인을 냉정하게 고찰해야 한다. 인간이 선한 존재라고 믿고 싶어도, 영화처럼 선의에서도 얼마든 '죄'는 파생되기 때문이다.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죄는 자신의 욕망에 대한 솔직한 표현일수도, 또는 자신에게 절대적인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저지르는 것이기에,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한 사람의 수사관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임은 물론이요, 수사관 스스로의 인격이 피폐해지지 않기 위한 마음근육 단련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사실무에서 기자는 그 양쪽 모두의 자세가 형편없이 함량미달임을 느끼며 부끄러웠던 순간이 태반이다)
8. 그럼에도 인간은 살아가는 것, 자신의 죄를 긍정하고, 관계들을 스스로 지탱해가면서
삶의 내밀한 모습은 대부분 해피엔딩이 드물다는 것이 이 영화가 보는,, 삶에 대한 풀이방식일 수 있다.
욕망에 충실할 수록, 죄는 파생된다. 그러나, 규범은 그것을 금지하고, 관계를 지켜나가길 권장한다.
그렇지만, 그 모든게 올곳히 지켜지긴 어렵다. 그것이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욕망과 관계 속 충돌을 인정하고, 자신과 타인을 최대한 상처주지 않는 방식의 모순을 견디고 사는 것이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것조차 '비극'이라는 시선으로 볼 필요는 굳이 없지 않은가? 이게 내와 남들이 각자가 이기적이면서도, 알고도 모르는 척, 괜찮은 척 스스로를 자위하고 타인을 위로하며 사는 삶의 방식인 것을
그렇게, 자신을, 남을, 턱없이 긍정하면서-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욕망과 관계의 균형을 지키고 살고 싶다는 것 역시 개인의 선택이지 않을까?
뱀발. 경찰로서 영화속 수사관들의 모습에 대해 언급하자면, 일단 봉감독에게 감사하다.
<살인의 추억>에선 현장감식장면이 형편없이 우스웠지만(발자국을 경운기가 밟고 지나가고^^;-뭐 그 당시엔 충분히 그랬대도 마냥 억울할순 없는,,), <마더>에선 조금이나마 나아졌고, 또 언급도 해주신다 (형사1 왈 "요샌 현장보존이 잘 되있어?" 형사2 "요새 애들은 CSI같은 거 봐서, 신참들도 되게 샤프해요")
그리고 다소 비중있는 형사 제문이,, 물론,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그랬듯, 여전히 진실에선 소외되고, 변죽만 울리지만, 그래도 정(情)이 있다. 억울한 도준을 잡아넣으면서,-결국 억울하지도 않지- 안타깝고 미안해 한다.
"어떻게 이럴수 있냐", 덤비는 김혜자에게도 면목없어하면서도 쪼매라도 다독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다소 무능하고, 또 쉽게 잡을 욕심에 비겁해져도, 난 그런 아주 연하게 드러나는 인간애를 따뜻히 봐주지 않을 수 없다
(무능, 비겁한 경찰의 모습에 분개했을 관객들 보시기엔 넘 후한 '제 팔 안으로 굽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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