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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호 : 스마트치안, 경찰데이터 A&R을 위한 공부와 연대
영화 <공작> 신념의 내재화, 혹은 거짓된 이익의 신념화, 형님의 향기 본문
"북한 남자가 더 간지가 있어요." 같이 영화를 본 아들의 감상평이다.
<1.회의하는 남자, 2.나름의 신념이 있는 남자. 3.이익에 흔들리는 남자. 4.신념에 가려진 이익을 추구하는 남자>
신념과 확신으로 움직이는 남자는 간지가 있다.
잘못된 이익에 흔들리는 남자는 볼품없다.
회의하는 남자에겐 감정이입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에서는 신념과 확신으로 움직이는 남자를 그리 쉽게 볼수 있던가?
대부분 잘못된 이익에 복무하거나, 혹은 남을 내세우는 남자를 자주 볼 뿐이다.
그러나 신념에 도취하는 것은 위험하다. 잘못된 신념일 수 있다.
크게 성패를 겪을 일이 별로 없는 경찰 공무원의 생활 속에서 나는 유난히 뭔가 마디, 매듭이 많고, 성과 혹은 상처, 좌충우돌들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런 '경화된 자기 인식'이 큰 원인 이었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조직의 운영자의 언어습관에는 오히려, '모르겠다', '확인없다', '대안' 등 적절한 유연성에 대한 단어가 많다고 한다.
어떤 이에겐 사실 신념은 자신의 삿된 이익을 포장하는 도구에 불과하기도 한다. 영화에선 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목적이면서, 빨갱이를 막겠다고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예이다. 그런 신념은 차라리 '악'에 가깝다.
평범하게 건전하고 좋은 가치는 아마, 돈을 벌어 서로 풍요롭자, 서로 교류하자는 가치에 대한 믿음 일것이다. 서로의 이익을 같이 추구하고, 이를 교류를 통해 해결하자는 취지는 많은 것을 엇나가지 않고 연결시켜주니깐.
아마 그런 취지에서 '돈으로 하는 거래'는 많은 것을 정화시킨다고 나심 탈래브가 말했다.
종교, 민족에 의한 신념은 사람을 죽이지만, 적정한 금액에 거래하겠다는 주장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동일한 언어이다.
<영화에선 리처장만이 '돈'을 얘기하지만, 실은 그게 제일 선한 목적이었다>
게가다 무형의 가치에 대한 신념은 실은 개인의 보호, 권력의 유지, 소아적 이해일 때가 많더라
국민을 전쟁에 소용돌이에 밀어넣어 사람이 죽는다 하더라도, 나의 이익이 중요하다.
나의 이익은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한다. 이 논리도 아닌 믿음이 실제 그런 사태, '총풍'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여전히 힘이 강하게 잔존해 있다.
흑금성이 2010년이 되었을 때 체포되어 징역 6년형을 받은 것은 그 힘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역량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아마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앞으로 50년쯤 후 1997년~20??년까지 현대사를 재정리할 때, 사실상의 대한민국의 20세기가 언제쯤 어떤 형태로 끝났다고 할지...
프랑스의 19세기는 드골이 2차세계 대전 후 좌우 부역자들을 모두 싸그리 숙청하므로써 사실상 끝났고, 20세기를 열 수 있었다. 우리 역시 그런 '부역'의 역사가 정리되어야 진짜 21세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일에 '인생의 가치'를 투사하는 것
가끔 하는 일의 가치에 감화되어, 그 일이 인생의 일처럼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맨 처음엔 그것이 자신의 생계를 위하거나, 더 큰 목적을 위한 명목상의 도구더라도, 그것이 갖는 본연의 가치와 그 일을 통해 만나는 사람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점차 인생의 일(life work)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흑금성과 리처장에겐 '남북교류', '광고사업'이 그런 일이 었다.
과연 그것은 긍정적인 역할의 발견과 내재화일까, 아니면 왜소한 일상에 의미를 담고자 하는 초라한 세뇌일까?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형님이 느껴질 때
그렇게 자기의 이익에 충실하여 부서원을 부품으로 앞세우는 일을 겪는 것이 조직원의 일상이다.
그러면 가끔 내 조직의 반대편에서 호연지기를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은, 형님의 향기가 나는 사람을 접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흑금성을 마지막에 보호해주는 사람은 자신의 상관인 '실장'이 아니라, 대적해왔던 북한의 리처장이다.
조직 속에서 크고 작은 부서의 일원으로 다른 부서를 접하거나 혹은 조직간에 사람을 자주 접한다.
나의 형님 역할을 해줘야 할 사람들이 내 형님 역할을 해주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다른 부서나 조직의 사람에게서 형님의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차라리 그 형님에게 나의 등을 기대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줘야겠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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