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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 소셜네트웤, 공동체, 시대는 어디로 가고, 개인은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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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 소셜네트웤, 공동체, 시대는 어디로 가고, 개인은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미리해치 2011. 6. 5. 15:34
1. 성선설과 성악설


성선설과 성악설, 과학은 아니고, 신념과 믿음, 주장만 있는 해결되지 않는 논쟁이다. 하지만 논의의 실익(實益)이 없지 않다. 

'인간이 선하다'는게 '참'이라면 '나'라는 개인도 헛된 욕망을 제어하고, 양심과 규범을 지키며, 세상의 선을 더 키워나가는게 일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반면 '인간은 원래 악하다'는게 '참'이라면 그저 나 역시 '헛된 양심(?)' 따위에 저어되지 않고, 내 욕망을 위해 속이고 빼앗는 것에 다소 둔감해지리라


2. 성선설에 대한 성서적 또는 과학적 주장 들

 


<성서에서의 인용>
 성경의 '신이 모든 것을 보기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했다'는 표현은 '창조성'이 선을 행하려는 인간의 본능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은유적 표현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정신분석과 성격을 융합하려는 심리학자 스캇펙의 견해)

<진화론에서의 인용>
과학적 사례에 있어서, 수십만년전 원시인간집단의 유골에서, 병을 앓고 있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는 개체가 노화하여 사망한 화석을 심심치 않게 본다고 한다.  살벌한 원시집단에서도 인간은 병약한 타인을 돌봤다는 것이다.  즉 인간집단의 진화는 '이타적 보살핌'을 중요한 요소로 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즉, '돌볼줄, 희생할줄, 배려할 줄 알기에 계속 발전하고 진화했다는 것'이겠지

하긴 '자연선택',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의 기본개념은 본질과 다르게 '이기적'라고 오해되는 측면이 있다.  진정한 '적자생존'은 개별개체의 경쟁승리가 아니라, 집단과 후손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이기적 선택이기에 그 선택에는 '배려', '협력', '적정한 희생'의 개념이 들어가 있다.


3. 욕망의 폭압적 집적, 증폭
 

 

하지만 지금 세계가 그런 배려와 상호 존중이 확고히 자리잡았다 보긴 힘들다.  

인종/성/계급/부의 차이에도 불구, 갈취하고 억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개념 자체는 지난 세기에 비해서는 '분명 지켜야 할 가치'로 정착하긴 했지만(행동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전엔 그 가치 자체에도 논박이 있었으니)

욕망의 추구 역시 엄청나게 폭증했다.  아마 자본의 집적과 세계화, 그리고 경쟁의 극대화 등이 요인일 것이다.

안빈낙도 할수는 있을 지언정, 그것이 상대적 박탈감을 더해준다


4. 인터넷과 공동체

 


세계를 묶은 인터넷은 두가지 측면을 모두 내포한다.  구글을 대표로한 검색엔진과 집적되는 개인정보들, 쇼설네트웤을 통해 파악되는 개인적 기호를 통해 개별적으로 특화된 소비정보를 미뤄낼 수 있고, 권력이 의도한다면 (혹은 이미 지금도) 극단적으로 개개인의 선호와 행동을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인터넷은 '공동체주의'를 개인들 서로에게 확인시켜줄 수 있다.

 


연대하고 배려하고, 함께 해결하는 '공동체'는 항상 인간세상에 존재, 발전, 변이, 소모를 지금 이순간에도 반복하고 있다.  '이상적인 공동체'는 인간의 근원적인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바야하로, 인터넷과 공동체 는 앞으로 인간이 선하냐, 악하냐, 혹은 어떻게 귀결하느냐를 보여주는 바로비터로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떻게 전이되느냐는, '개인'과 '집단이성', 선하고 악한 '권력'들 사이의 치열한 절충으로 크게 혹은 작게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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