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호 : 스마트치안, 경찰데이터 A&R을 위한 공부와 연대

햇볕 장마당 법치 본문

통일, 국제 사회

햇볕 장마당 법치

미리해치 2018. 8. 5. 17:29

<이종태 지음, 개마고원>


햇볕, 과 장마당, 이라는 제목에 끌려서 고른 책인데 가장 핵심 키워드는 맨 아래 '법치'였다. 

2018년 상반기 남북관계는 그 전과 전혀 다른 방향과 속도로 움직였다.  

한명의 시민으로서, 이전과 달라진 남한과 미국의 정치 여건은 막연히 알고 있었지만, 북한 내 사정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막연하게는 북한 내부에 장마당이 많이 생겼고, 자생적으로 피어난 초기 자본주의가 원동력이 되어 북한을 이렇게 국제 무대에 나오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를 둘러싼 좀 더 깊고, 많은 이야기와 앞으로의 전망을 알고 싶어 책을 골랐다. 

그리고 저자의 통찰에 은혜를 입었다.   


법치주의와 사회 주의

중국과 북한이 법치주의의 체제로 들어온다는 것은 사회주의의 수정 혹은 포기를 의미한다.  법치주의는 사회구성원을 각자의 욕구와 의지를 가진 개인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은 이런 개인간의 관계를 규율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는 도덕적으로 자본가 등 착취계급을 타도하고 도덕적으로 완성된 공산당 체제를 상정하고 있다.  따라서 법치주의와 사회주의는 태생적으로 긴장관계이다. 

이런 현상에서 북한의 법체계는 아직 한참 초급 단계에 있다. 남북 협력 사업 초기에, 비료나 종자 등 물자를 보낼 '위치'를 특정할 '지적도'가 없어서, 'ㅇㅇ리 개울 건너편 1000평'이라고 표기했다는 사례가 있다. 북한의 땅은 모두 국가의 소유이니 개인간 소유 관계를 기록해둘 '지적', '등기'의 개념도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선택을 되짚어보면 북한의 앞날을 참고할 수 있는데,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의 확대, 시장주의와의 조화를 선택했다. 결국 그 선택은 당위라기 보다는 '외국 자본 유치를 통한 경제 발전'이라는 현실 때문이었다. 외국인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소송을 보장하고 법제를 정비해야 했다.  한편 중국의 법치주의 발전은 상당히 흥미로운 측면이 있다. 1990년대~2010년대까지 외국 투자를 확충하면서 '법이 없는 공백'을 각종 행정 지침으로 대응하면서, 2000년부에 이 행정 지침을 입법화했다.  아직도 공백은 존재하지만, 중국 사회 특성에 맞는 법체제를 자생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에 비해 저자는 우리 법제는 형식상 높은 수준에보 불구하고 그 내용은 주로 일본의 법률을 복제해서 아직도 현실과 괴리가 존재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 법이 현실을 고민하는 역할을 소홀히 하고 있는 지점을 지적한다.  공감한다. 특히 형사법 분야 직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형사법이 현실에 대한 책임있는 고민을 하지 않고, 이미 70년전에 만들어진 뼈대위에서 고답적 논의만 하는 것이 답답하다


북한식 시장경제의 출현, 장마당

북한의 장마당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국가가, 생필품도 조달하지 못하고, 국가가 운영하는 각종 작업장도 원자재 수급 실패로 작동이 멈춘, 즉 수요-공급 조달이 완전히 실패한 시기에 등장했다. 개인들이 자기 먹고 살것은 자급자족하거나(농사), 외부조달(중국 친지 들로부터 지원 혹은 구매)하면서 그 잉여분을 자체 시장에 갖다 파는 거래가 이뤄지고, '시장'이 생기자, 보따리 장사는 더 활발해졌으며, 북한 내부에서도 '자본가(돈주)'가 운영하는 '가내반(소규모 생산 공장)'이 생기고, 그런 유통 구조도 생겨버린 과정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인', '자본가', '공장'의 탄생, '장마당'의 결성에 대한 묘사는 흥미진진하다. 중국, 러시아는 국가 주도의 시장 경제 도입이지만, 북한은 각자들이 살기 위한 자생적 시장의 생성이었다. 역경속에서 자신의 먹고 살길과 앞날을 헤쳐가는 우리 민족 특유의 강인함과 부지런함, 욕심이 느껴져 뿌듯했다



계획경제, 기획의 무상함


계획경제는 국가가 수요와 공급을 완벽히 계획하여 양자를 일치시킨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전 세계에서 모두 실패하였음을 알고 있다.1990년대 북한에서도 실패로 귀결했다.

북한에서 장마당이 생긴 과정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논리 귀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작은 1990년대라는 극빈기에서야 발아했다.  

그 전까지는 이념과 목표가 모순을 덮어줬다. 북한은 1960년이후 국제 공산주의의 전초기지로서 세계 공산화의 첨병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주창했고, 이에 따라 다른 공산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내부 체제의 열악함을 외부 지원으로 해결한 셈이다.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냉전기에는 '도미노 이론'이란 주장이 힘을 받았다. 공산주의에 앞서 노출된 나라가 무너지면 다음 나라로 확산될 것이라는 것이 '도미노 이론'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훨씬 도미노 효과가 강했다. 

1990년대 북한식 계획경제가 완전히 파탄이 나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생존이 눈앞에서 위협받는 위기가 아니라면, 이미 내재된 그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에너지로 발현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도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국가 경제라는 거대한 운영체제는 그러하다지만, 과연 경찰은, 혹은 그 외 공공재와 서비스의 운영체제는 수요와 공급을 잘 맞추고 있으며 상품의 혁신을 이루고 있는가?

그리고 내 자신도 조직의 구성원, 기획자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뭔가 선후의 원인-목표의 연결, 자원 동원 체제와의 결합, 조직 내외 이해관계와의 논리 형성, 이런 점을 고려한 목표의 설정과 일정'등을 억지로 계획하고 그 속에서 남들이 맞춰줄 줄 것을 요구 하지 않는가?

내 작은 머리와 좁은 이해 수준으로 작은 울타리의 변화 조차 결코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습관을 잘 버리지 못하고 있다. 조직의 변화도 결국 일정한 '시장'에 맡겨야 한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


생필품 단위의 시장은 북한 당국의 방임 속에서 자생했지만, 부동산은 적극적인 개입/결탁(사실상의 '허가제' 초기 형태라고 볼수도)과 함께 형성되고 있다.  신도시 건설을 '돈주'들이 원자재 구매부터 건축까지 맡는 것으로 제안하고, 이를 국가가 승인하면 일정 비율은 국가에 헌납하고 일정 부분은 돈주들이 건설후 매매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인프라 시장은 이렇게 기획-자원-구축-판매까지를 제안하고 국가와 협력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것은 인프라 연구 개발의 기획업무를 맡고 있는 나에게도 착안점이 있다. 


개성공단의 원대한 목표와 중단

개성공단은 북한에게 시장경제와 법치주의의 경험을 주었다. 북한이 돈을 버는 것 뿐 아니라, 돈을 버는 경험, 생산-유통-판매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문제 해결의 경험을 축적하게 해주었다. 당시 남한으로부터 교육받은 회계 이론을 자기들끼리 전수 교육하여 세금을 걷는 체제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 그 예이다. 북한은 그 전까지는 세금이라는 것도 없는 사회였다. 국가가 단일한 생산주체이니깐, '세금'은 있을 수 없는 체제였다. 오히려 '세금'은 타도해야 할 착취계급의 유습였다. 이것이 다시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제도적으로도 개성공단 내 '탈세'를 막기 위한 회계자료의 교환 제도를 합의하고, 개성공단에서의 논의에 터잡아 이후 '나진선봉지구'에서는 행정소송 제도가 도입되었다. 특히 행정소송은 무오류를 전제로한 공산당 국가 체제에서는 존재 의의가 부정되는 '시민의 국가'에 존재하는 소송제도이다. 시민이 국가의 오류를 시정하라고 요구하는 소송제도이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는 시장경제의 도입과 법치주의의 확산과정과 결합되어 진행되는 것을 상정해야 한다.  최초 개성공단의 구상은 남북이 모두 이를 염두에 둔 거대한 청사진이었다. 지금의 공단(800만평)보다 훨씬 더 큰 1200만평이 배후 소비/유통 특구로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합의한 것은 이 시설의 확충을 통해 시장과 법치를 확산 하기로 서로 합의한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중단되고, 퇴조한 것이다. 

최초 계획시의 원대한 계획은 반동의 시간이 없었다면, 발전해갔을 것이다. 실제로 공단 내에서 남북한의 사람들이 서로 변해간 많은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고위자들 사이의 결단과 별개로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호칭(북한, 남한, 수령님, 원수님), 그리고 운영체제(인센티브의 문제, 업무 지시의 방식)에 있어 남북은 꾸준히 갈등했지만, 그것을 극복해갔다. 

 

한반도의 번영을 위한 법치의 전파

현재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나진 선봉지역을 경제 특별지구로 개발하고 있다.  나진 지역은 중국와 러시아로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 지역을 주요한 기점으로 러시아는 부동항과 연계된 철의 실크로드를 완성하고, 중국 역시 '일대 일로'의 큰 기반을 놓게 된다. '나진'은 세계적인 물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잠재력이 있는 지역이다.  한국으로서도 반드시 참여해야 할 지역이고, 경제적-정치적 기회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동북아가 남북한-중국-러시아가 연계하여 물류와 에너지 흐름을 재편하게 된다는 것이 이 지역을 바다 앞에서 막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까지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며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남북한 중국 러시아의 상호 투자와 연결을 허용하는 것이기에 미국에는 달가울리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즉, 미국은 북한을 '실질적 위협이 없는 불량 국가'로 묶어서, 남한-북한-러시아-중국을 각각 단절시키고, 국제 정치적으로 경고를 날릴 수 있는 샌드백으로 놔두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 게임의 룰을 북한은 '핵'으로서 '실질적 위협이 없는 불량국가'에서 스스로 탈피하여 자신에 대한 처우를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변화는 우리에게도 기회이다.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하여 물동량 재편의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미국이라는 거대한 상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는 어려운 문제다.

물론 저자는 북한의 변화를 이렇듯 이성적인 합리적 과정이라고만 설명하지 않는다. 북한의 대남 전술은 여전히 남남 갈등 야기나, 사회주의 혁명 주장, 미국과 맞상대하는 독자 전술을 주장하는 등 구시대적이고 모순적이며 이중적인 면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에서 저자는 시장주의와 함께 법치를 전파할 한국의 역할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미 베트남에 사법시스템 전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맥락에서 경찰 역시, 과학수사시스템 전수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법은 핵보다 강하다. 그 길은 더디지만 유일한 길이다. 


붙임. 4.27 선언 100일 기념 통일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서 20~30대가 통일에 대한 인식이 선언 전보다 더 부정적이 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명박-박근혜 시기에 적대 관계였기에 현실성이 없었던 통일이 오히려 현실 가능한 의제가 되자, 더 불안해졌으리라, 특히 지금 20~30대의 취업-결혼 등 생존과 인생의 행복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기에 더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더 실감하게 된다. 정치적인 체제의 완전한 통일이전에 '법치주의와 시장 주의를 택한 예측가능하고 동질성을 가진 민족 공동체'가 인접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간 거세되어 왔던, 정치, 경제, 문화의 거대한 기회가 열리게 될 것이다.

'통일, 국제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굽시니스트 <본격 2차 세계 대전>  (0) 2018.08.2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