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호 : 스마트치안, 경찰데이터 A&R을 위한 공부와 연대

종사관, 전은제님을 보내며 본문

사람이야기

종사관, 전은제님을 보내며

미리해치 2018. 2. 27. 19:13

2005년은 노무현 대통령 임명 후, 논쟁이 개시된 '수사권 조정/독립론'이 활발하게 달궈질 때였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수사권 논의'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정책결정권자들 사이에서 조정 협의에 가까웠다.

공개적 토론의 분위기도 아니었고, '경찰관은 발언을 자제하라'는 지시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2005년은 인터넷을 토론장으로 한 공개 발언과 토론이 백가쟁명했다.

정치, 정책, 사회를 논하는 토론게시판이 활발히 운영되었다.   

몇몇 경찰관이 "경찰이 왜 스스르의 이름으로 책임을 지고 수사를 해야 하는지", 시민들에게 말을 걸었다.

시민들은 경찰에게 물었다. "당신들에게 자격이 있냐"고? "경찰이 권력을 가지려 하는 욕구 때문아니냐"고

시민과의 토론을 통해, 경찰 스스로도 좁은 인식을 되짚어보고, 쌓여진 과오를 자각할 수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전은제님을 만났다. 

여름날, 경찰청 뒷편 서대문 어느 식당에서, 처음 만나, 서로 다른 관점에서 토론하고, 신명났다. 

전은제님은 '수사권'이 경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그 역할은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우리 경찰은 당시 전은제님을 비롯, 시민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한 분들에게, 천군만마의 도움을 받았다.

국민에게는 신뢰가 낮은, 검찰-경찰이라는 권력기관 간 '조정'이거나, 양 기관 간 '쟁투'같은 의제가 아니라, 

시민의 입장에서 개혁해야 하는 이슈라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 당시 '수사권 조정/독립'이라는 용어가 '수사구조개혁'으로 바뀌었다고 알고 있다)


그때 꽃비같이 만발했던 수사구조개혁 격론은 어느날 

십자포화처럼 퍼붓는 정치이슈 속에서, 고래같은 주체 들간 결정으로 중단되었다.

개혁은 실패했다. 경찰은 패배했다. 

시민에게 빚을 지고, 사회를 더 낫게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시민과 대화하며 경찰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를 밝혀가는 것이 절실하다는,, 쓰리지만 귀한 경험을 했다.


전은제님은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해주셨다.  우리를 다독이기도 했고, 가끔은 질타해주셨다.

당시 전은제님이 폴네티앙에 가입하시면서 쓰신 필명 '종사관'에는 그 애정이 배어 있다. 

종사관은 조선시대 포도청에서 포도대장 휘하에 책임자급 무관이다. 

방영된 MBC 다모에 나오던 '종사관'에서 따오셨지. 

그리곤 경찰관들이 용기없이 주저할 때, 길을 보여주고 직접 나서주셨다.

<2011년 형소법 개정 재논의한 청원 제출하는 종사관님(오른쪽)>


종사관님을 만난 경찰은 2005년의 수사구조개혁 논의에서의 쓰라인 경험 후,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 

무언가 개선될 것 같은 흐릿한 순간도 있었고, 더 나빠지는 나락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그때 종사관님과 함께 했다.  

그러면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종사관님의 말이 애처러웠다.

종사관님은, '경찰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인데, 경찰의 큰 위기가 와도, 나서는 이들이 이 몇 명밖에 없다. 십년이 넘도록 내내 이 몇 명뿐이다. 이들이 안쓰럽고, 애잔해서, 외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종사관님과 그 몇 명의 경찰관, 그 몇 명의 경찰관과 종사관님이 그 십여년을 그렇게 쓸쓸하게 걸어왔건만,,,,


그리고, 전은제님을 떠나보낸 지금 한번 물어본다. 

경찰은 시민과 접점을 넓히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발전했는가? 

조직이 나아졌는가? 경찰이 나아졌는가? 나는 과연 나아졌는가?

2005년 당시, 이 질곡을 끊어내겠다고 비분강개하던 그 청년은 이제 세상사에 지치고 찌들린 중년이 되었다.

당시 함께 꿈을 꾼다고 생각하던 동료들은 경찰 안과 바깥에서, 자기 뜻대로 혹은 처지대로, 멀어졌다.

과연 그때처럼 모두가 함께 손을 잡았던 기억은 그저 '가을의 전설'처럼 아련하다.

그러다가 이제 2017년의 가을, 수사구조개혁, 자치경찰, 경찰조직 개편의 논의가 시작되었다.

12년 전 처럼 마법의 가을이 다시 올 수 있을 것인가?  비록 실의한 중년의 경찰이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떠나감이라니, 황망하고, 죽음이 갈라놓는 인간사의 비장함에 말도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십수년을 같이 보낸 전은제님이 떠나가고, 우리는 무엇을 바라면 한 발자국씩 나아가야 할까?


삼가 전은제님의 명복과 고인의 평온을 기원합니다.

따뜻하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사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병무 님 (낮은계단)  (0) 2010.06.08
황정인님(죽림누필)  (0) 2010.06.0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