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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DIARY

지리산 1박3일 겨울 종주

미리해치 2016. 12. 27. 14:48

2016년 12.22~12.24 지리산 첫 겨울 종주,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나를 닦는 감사한 시간을 보냈다.(사진은 지리산 국립공원 페이스북에서 인용)

1. 40대의 우울한 가을 극복


43세가 되어 맞은 가을은 괴로웠다.  

늙어가고 있음과 내 인생을 그리 좋아할 수 없다는 불화감의 충돌이 날 괴롭혔다.


늦가을을 지나며 우울감의 바닥에서 삶을 재정비하기로 했고, 그 기초로 몸을 만들기로 했다.

174cm의 키인데, 78~82kg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무겁고 둔한 몸이었다. '한끼만 먹기', '간헐적 단식'을 시도해보기도 했고, 매일 운동을 계속했다.  74~76kg까지 몸이 가벼워졌다. 


삶을 재정비하고자, 자기개발서를 읽으며 삶의 지침을 만들고자 했다. <미라클 모닝>의 아침 시작, <성공의 법칙>에서 자기 이미지 구상, <나폴레옹 힐>의 11가지 지침 들,, <구본형>의 자기 경영하는 삶

삶의 목표를 다시 정하고, 하루를 잘 살려고 노력하면서 생활이 조금씩 좋은 흐름을 탔다.


2. 떠나자. 잔잔한 일상의 흐름 속에 모험을

일상을 잔잔하게 정비하고 몸의 재구성이 1단계를 넘어서자, 그런 스스로에게 '상'을 또는, '매듭'을 짓고 싶어서 지리산을 가기로 했다. 누가 말했던가? '일상이 잔잔할 때 스스로를 위한 모험을 만들라'고

두근 두근 며칠동안 겨울 종주에 대한 글을 찾아 읽고 준비물을 챙기며 D-day를 기다렸다. (준비물은 1박2일, 비상시 2박3일을 상정해서, 식량은 땅콩과 아몬드 육포, 의류는 등산양말 2, 기능성 티 2, 파카 1, 넥워, 장갑 2, 핫팩 6개, 코펠, 버너, 위스키 작은 병-식량은 예상보다 남았다.)  

그런데 웬걸, 비가 온다. 여기 뿐 아니라, 구례에도.  비맞으며 하는 등산은 항상 괴로운 추억이었다.  여름비조차. 하루를 맥빠지게 미루고, 다음날 밤을 기다렸다.  두둥 '비'가 '흐림' 혹은 '눈'으로 바뀌었다.  아 눈이라,,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다.


3. 출발-성삼재-노고단

수원역에서 23시 무궁화를 타고 출발, 구례구역 도착하니 03시 15분, 택시를 합승하여 타고 성삼재까지 올라갔다.  눈이 내리고 있었으나 다행히 올라가는 길을 막아놓진 않았다. (이걸 출발 전까지 확인할 수 없어서 아슬아슬했다)  성삼재까지 올라가는 길에 눈이 쌓여 차가 미끄러지자, 택시 기사님이 약 3/4지점에서 그만 가야겠다고 포기하여 그곳에서 부터 걸어올라갔다.  눈이 금새 쌓인 노고단고개를 오르는데, 예년엔 '완만한 길'을 선택해가며 1시간30분정도 걸렸는데, 이번엔 '빠른 길'을 선택해서, 1시간쯤만에 노고단에 올랐다.(05시) 

깊은 새벽길 노고단 대피소를 만날 때마다, 1단계를 클리어하는 기분, 찬 바람 부는 산속에서 따뜻한 불빛을 만나는 안온감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노고단 대피소 구석에서 2시간 가량을 누워있다가, 체력 충전하고, 취사장에서 물을 끓여 커피와 생강차를 보온병에 담고 출발했다. 이 때가 07:45


4. 노고단-삼도봉-연하천-벽소령

아이젠, 스패츠, 고글, 넥워머, 마스크로 완전 무장하고 노고단을 나섰다.  어두운 새벽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압도적이고 아름다운 설경에 혼자만의 감탄을 가슴속에 터뜨렸다. (풍경사진은 별로 찍지 못했다. 아래 사진은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사진을 지리산 국립공원 페이스북에서 찾아 게재-아래도 동일)

하루를 기다렸지만, 이런 설경을 볼 수 있다니, 행운이었다.  최근 붙잡고 사는 '자기 계발서'에 보면, 세상에 감사해야 한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가치가 있다는 가르침이 있다.  이런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가르침을 더 이해하게 해준다.

 

눈보라가 치는 삼도봉을 지났고, 설산의 페이스를 짐작할 수 없어, 당일 벽소령 도착을 목적으로 곁길로 빠져야 하는 '반야봉'은 가지 않았다. 30분에 5분씩 시간을 맞춰 멈춰서, 물,간식을 조금씩 먹고 정비하면서 페이스를 지켰다. 2시간쯤 마다 봉우리를 지나면서 위스키를 한모금 마시며 열기를 끌어올렸다 (아래는 눈보라치는 삼도봉에서 찍은 사진)

 

연하천을 12:40분쯤 도착해서, 물을 끓여 율무차로 점심을 먹고, 따뜻한 물을 담아 벽소령을 출발했다. 

몇번 오던 기억에 따르면 '연하천-벽소령'구간은 1일차 체력이 조금씩 떨어져가고, 그날 당일의 등반 제한 시간의 마감 시간에 쫓기며 조금 힘들었던 느낌이었는데, 웬걸 이번엔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섰다. 벽소령에 도착했을 땐 겨우 3시였다.  체중을 줄이고 체력을 키운 보람이 느껴진다. 그러나 벽소령의 추운 오후부터 다음 새벽까지 긴 시간을 책이나 다른 여흥거리 없이 하루밤을 보냈다.(심심하여 셀카 놀이)

 

벽소령 혼자 셀카 지
그리고 가져간 위스키와 육포로 해발 1300미터에서의 혼술, 고풍스럽고 맛있고 취한다.


5. 이틀차 벽소령-세석-장터목-천왕봉

전날 혼술 헤롱헤롱, 8시에 잠들어서 06시까지 잤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물을 끓여 차를 담아서 06:45 출발했다. 산에서의 출발치고는 늦은 편이었음에도, 세상은 깜깜하다. 새벽에 벽소령에서 세석으로 출발하는 이 구간이 항상 약간의 무서움과 산길의 낯설음과 함게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첩첩히 쌓인 산 속에서 해가 뜨기 시작하면 막대한 경외감을 느낀다. 태양은 날마다 떠올라 세상을 비춘다. 이 당연한 진리를 도시인들은 잊고 산다.  장엄하고 아름답다.

지리산의 일출-지리산 국립공원 페이스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수한 감탄이다. 라는 구본형의 글을 자주 되뇌인 산행이다. 벽소령에서 넘어가는 구간에서 여명을 볼 때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사했다. 삶의 순간순간을 진하게 누리는 것, 살아있는 순간을 진하게 산다는 것이 꼭 무언가에 불만을 갖고 결핍에 몸부림쳐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그런 감탄이 새벽-오전 산행의 피로에 조금씩 '쉬고 싶다'는 기분이 들때쯤, 눈 앞에 전망이 화악 펼쳐지며 세석평원, 눈 덮힌 세석 평전이 나타났다.(사진은 하늬바람님 블로그에서 퍼옴)


눈덮힌 세석평전(하늬바람님 블로그)

세석에서, 장터목으로 이젠 여행이 마감되는 구간에서 속세 생각을 했다. 어찌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구본형의 글을 많이 생각한 시간이었다. '나무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씨앗을 많이 퍼뜨리는 삶, 성장점을 유지하면서 얼마든지 거대하게 자라는 나무' 

글을 자주 쓰자. 몇가지 글 제목을 생각했다. 

체력이 재작년 가을 종주때보다 좋아졌다.  몸이 늙지 않고 젊어졌다는 것에 감사했다. 정신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의욕, 열정, 창의, 지성, 더 젊어질 수 있다. 

그리고 배포, 성숙, 용기를 키우고 싶었다.  짧은 1박2일이지만, 호연지기, 기백를 자각하고 싶었다. 

이번 산행에서 그런 '훌륭한 자아이미지'를 더 뚜렷히 하고 싶었다.


구본형은 삼국지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삼고초려'를 들면서, 누구자 진정한 위인을 모시기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한다. 그런데 그 진정한 위인은 자기 자신 의 속에 있다고 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모시기 위해 스스로의 군더더기를 버리고 찾아가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 자각의 시기로 만들고 싶었다.


장터목에서 차를 끓이고 옷을 갈아입고 마지막 정비를 마치고 천왕봉을 향해 올랐다.

장터목 휴게소에서 켜본 핸드폰에서, 실종자 수색 때문에 지리산으로 헬기 출동하고 있다는 경남청 이병석 계장님(기획예산계장, 경남청 드론폴리스 운영) 페북 글을 봤다. '어 저 헬기가? 맞네 경찰헬기?"하며 신기해 했다. 신기한 페이스 북의 세상,,


그런데, 천왕봉을 1킬로 앞둔 지점, 헬기가 그림처럼 내려앉더니, 경남 드론폴리스들이 장비를 세팅하는 장면을 마주했다. 반가운 인사를 잠시 나누고, 실종자를 찾기 위해 드론을 띄우는 장면을 봤다.  실종자의 안타까운 사연, 성탄이브인데,, 나는 놀러왔는데, 여기서 또 경찰살이의 단면을 본다.

드론을 뛰워 실종자의 열영상을 찾고자 시도하는 경남 드론폴리스 경찰관님들

더 함께 하지 못하고, 내 갈길을 나섰다. 통천문을 거쳐 드디어 천왕봉으로.  통천문을 지나는 순간마다, 드디어 산으로 부터 허락받는 겸허함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번 종주는 설경의 아름다움을 실컷 만끽하고도, 상대적으로 눈보라나 바람도 적었다.  산신령님께서 도와주셨다.

1시 30분 정상에 섰다.

몇장의 인증샷, 인구밀도가 낮은 종주구간에서 천왕봉은 가장 번화지역이다.  다닥다닥 사진을 찍고, 자축의 사진과 정상에서 '한모금'을 여기선 '세모금'을 했다. 급격히 기분이 업하는 동시에 중산리로의 급경사로에서 핑도는 기분의 위기감을 느꼈다.


중산리로의 내리막은 3시간 이상 걸린다. 5.4킬로, 여정이 마무리하는 길에 속세의 생각을 많이 했다.

일을 열심히 하자. 배우자. 계급/직장/보직 이런 것에 의존하는 삶은 진짜 내삶이라고 보기 어렵다.  황야에서 외롭게 사냥하고 발톱을 가는 늑대가 결국 다시 자신의 영토를 일구게 된다.  범죄학, 심리학, 분석, 조직운영 좀더 깊이 관심을 가지고 쌓아가자.


남에게 새로운 일을 강요할 수는 없다. 내가 잘 하고 성공한 일을 남에게 옮겨가는 확산으로 접근해야 한다. 범죄분석의 기본적인 표준화, 다양한 확산, 융홥화 등 일단 내가 잘 해내고 넓혀야 한다.

 

남의 컨텐츠를 편집하는 수준에 머물러선 안된다.


지리산에 올때마다 느끼는 점은 지난한 걸음이고 힘겨운 걸음 같지만, 뒤돌아보면 내 발자국이 저 멀리 구름 뒤편 봉우리에서부터 여기까지 이어졌다는 뿌듯함이다. 


'언제까지'라는 것에 너무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올바른 방향이면 그리고 멈추지 않고 걷고 있다면 나를 저 곳, 그 바라는 곳에 데려다 줄것이다.


몸에 대한, 산에 대한 생각도 다시 했다. 2월까지 68kg까지 몸무게를 줄이고, 3월 첫째주에는 무박 종주에 도전하다.

5월 이후에는 더 좋은 컨디션으로 더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오자


중산리 계곡에 내려서, 계곡물에 머리를 담구고 이틀간 땀에 젖든 몸을 씻었다. 얼음장 같은 시원함에 그지 없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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