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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경찰 20년

미리해치 2017. 3. 2. 10:05

1997년 3월1일자로 경찰에 임용했다.

어젠 휴일인데다가 출근하는 일상 속에서 의식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오늘 다른 동료의 페북을 보다보니, 내가 20년전 3월 1일 임용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긴 무슨 날을 챙기는 것이 무에 특별하겠나, 하루 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사는 것이 진리이지


그럼에도, 횟수로 딱 20년이다. 이제 장기 근속자가 되었다. 

20년의 경찰 생활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본다.


1. 제주 전경대 312 부대(97년)

대학교 졸업 전, 다리 부상으로 서울과 고향(광주)에서 전투경찰대 소대장 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제주를 지망했다.

덕택에 아름답고 느긋한 곳에서 직장 초년생활을 시작했다.  배치받은 제주 312중대(지금은 명칭 변경)은 제주 공항 외곽 경비 부대였다가, 중간에 임무가 변경되어 내륙 예비 타격대로서 타 해안 경비 중대를 지원하는 임무 였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해안 중대 소대장이었는데, 나는 내륙 중대 부중대장(인사참모)의 역할을 맡았다.  기관장(중대장)을 보좌하고, 부대 행정을 종합하는 임무여서, 첫 출발이 '책상물림'이었던 셈이다.  상사와 관계, 행정담당자로서 역할 등 중요한 일들을 아무것도 모른 채 배워나갔다.   나름 파란만장, 포복절도할 초임지.  애틋하다.


(312 중대 본부소대 대원 정말 흐릿한 사진 속, 그리운 얼굴이다. 잘들 지내는지^^)


2. 광주 84중대(98년)

제주 1년을 마치고, 고향 광주를 신청해서 발령받았다.  고향 집에서 다녔던 유일한 시기다.    당시 광주는 격렬한 시위 문화 끝물에 있어서, 상황 출동시 나름 긴장도 있었다.  평소 훈련도, 정형화되지 않고 유격 작전식 훈련이어서 돌이나 쇠파이프를 이용했다.  그럼에도 훈련 강한 부대가 사이 좋다는 속설처럼 분위기 좋았다. 친구들 많고, 직장 동료들과도 호흡이 잘맞아서, 연일 부어라 마셔라 했던 시절^^;


(98년 겨울, 광주 동구청 어귀에서, 1소대원들과 : 고마웠던 동생들이다)


3. 서대문경찰서 형사반장, 조사반장(99년~2001년)

서울로 상경했다.  첫 발령지는 당시 집에서 가까운 '서대문 경찰서'.  형사과 보임으로 시작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형사는 치밀하고 꼼꼼하며 가부 판단에 명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어설프고 허술하며, 사람들과 일하는 것에도 맹탕이었던 스스로에 대한 이불킥 추억이 가득하다.  

인상깊었던 사건은 서대문 어느 아파트에서 초등생 여자 아이가 찔려 죽은 사건의 수사 본부에서 일한 것.  며칠 후 잡고 보니, 할머니에게 야단맞은 중학생이 분풀이로 칼을 들고 나와 눈에 띤 소녀를 따라가 찔렀던 사례다.  아파트 복도에 가득했던 피자국에 마음이 괴로웠다.   그리고 또 몇가지 사건을 겪으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예측 불가해함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리곤 경제범죄, 고소 고발을 주로 다루는 '조사반장'으로 일했다.  젊은 경위들이 대부분 거치는 부서인데, 온갖 인간 군상의 욕심들과 우스움들을 겪고 보는 곳이라, 술자리에서 서로 얘기할 기상천외할 사건들을 몇 개씩 겪는 곳이었다.  


4. 서울경찰청 수사과, 조사반 / 수사1계 기획반장(2002년~2003년)

서울 시내의 수사를 종합하는 <수사과 수사1계>라는 곳으로 발령받았다.  첫 년도에는 <조사반>이라는 부서에서 일했다.  경찰서 사건에 대한 이의 제기 사건을 검토하고, 좀 중량감있는 사건을 직접 담당하는 곳이라, '고수'들을 많이 뵐 수 있었다.

다음 해엔, 서울 수사경찰의 인력/제도 등을 운영하는 <기획반장> 보직으로 옮겼다.  내가 잘하는 것이, '수사 실무'보다는 '수사에 대한 기획', '자원 운영', '정보 종합'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고마운 보직이었다.  초록색 플러스펜으로 기안의 개인지도를 해주신 김윤환 과장님, 좌충우돌하는 나를 챙겨주셨던 백준태 계장님 등 밀도있는 인간관계를 체험했다.  특히 어렵고 속상한 순간, 보람있는 순간을 우여곡절 같이 보낸 끈끈한 엄도열 선배와는 이 때 평생 친구가 되었다.

(서울경찰청 뒷편 정원에서 엄도열 선배와)

이 시기, 기억에 남는 일은 서울청이 처음으로 1)유치인 화상면회를 도입하고 시스템을 개발한 것  2)외국인 유치인을 위한 안내서를 제작한 것. 3)서울 안에서 사건 이송을 원천 금지시킨 것(이때 전국적으로 이송이 폭주하여 대책이 필요했다.  서울의 전면 금지 후 초기 장난 아닌 혼란을 견뎌내자 점차 안정되서 서로 책임지고 수사하는 풍토가 되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확대된다).  4)서울 시내 조사계(현 경제팀) 사무실 환경 조사를 해서, 사무공간을 개선하기 시작한 것이다.(이때 열악한 현실을 실감했고, 어딜 옮길 때마다 사무실 공사하는 동기 부여되었다)


5. 경기 기동11중대장(2004년)

서울경찰청에서 첫 승진(경감)을 하고, 경기 고양경찰서에 위치한 경기 기동 8중대장으로 발령받았다.  110여명의 중대원과 함께 일하는 첫 '부서장'이었다.  책임자가 어떤 역할이고, 감정인지 처음 느꼈다.  서울에 비해 평온하지만, 아주 느긋하진 않았다.  과천 정부 청사나 평택 미군 기지 등 갈등 현장에서 앞장서 있었다.  앞에서 욕을 대신 먹는 직업임을 새삼 실감했다.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 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대충 경찰에게 몸빵시키는 패턴을 벗어나길 바라길 바라고 있다. 

(당시 기동 8중대 건물)


(평택항이던가, 어느 곳에서 동료들과,, 표정이 어째;;)


6. 부천경찰서-경찰청 기획단 치안시스템혁신팀(2005년)

  기동대 근무를 마치고, 경기 부천남부 경찰서 강력팀장으로 발령받았다.  부천의 근무 기간은 짧았다.  2월부터 4월.  

당시 참여정부는 경-검 수사권 논의를 시작했고, 논쟁이 뜨거웠다.  서울청 시절부터 여러 사례를 직간접으로 보면서, 문제 많은 현실이라는 것을 느꼈기에, 온-오프라인 논의에 끼어들었다.  온라인 토론 커뮤니티 같은 곳에 글도 많이 썼다. 그러다 보니, 언론 노출도 있었다.  (히유, 이런건 그리 편한 건 아니다.  부담스럽고, 노력봉사같다)

(당시 한겨례 21 기사, 몇몇 경찰관이 자체 토론하는 것을 게재하는 식의 기사였다)

4월달 경찰청에 수사구조개혁을 전제로 수사에 대한 제도개선을 기획하는 팀이 만들어져 들어갔다. 

당시는 정말이지 곧 법개정이 될 듯한 열망이 있었다.   여러 인-아웃파이팅을 했다.  그러면서, 예기치 않은 큰 내상을 입었다.

그리곤 부서 업무로서 결과물은 몇권의 책자로 남았다.  그 중 가장 스스로 자기 확신한 기획은 '범죄 정보의 종합 분석을 통한 발전 방안'이었다.  이때부터 관심사가 이 방향으로 꽂혔다.


(당시 제출한 <범죄 정보 분석 개선>에 대한 보고서)


7. 경찰청 수사국 지능범죄수사과(2006~2007)

10여개월 TF 근무를 마치고, <수사국 지능범죄수사과(현 수사1과)>로 자리를 옮겼다.  담당업무는 '공공범죄 수사 기획 및 수사 상황 종합'이었다.  그 해 2006년 지방선거가 있어, 거의 숙식을 사무실에서 했다.  현장 수사관들이 선거 범죄를 대하는 높은 역량과 기법을 알게 되었다.  그 때 경험을 모아, <선거사범수사사례집>을 꽤 흥미진진하게 썼다.  소위 스토리텔링을 많이 하여,, ㅎ

더 기억에 남는 건 당시 과장님이시던 이조훈 총경께서, 지능범죄수사에 대한 지식/정보/사례를 모아서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라고 하셨고, 평소 희망사항과 맞았기에 열심히 만들었다.( 항상 그렇듯 거의 없는 돈으로^^,) 그리고 내가 이런 일을 할 때 참 재밌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래 그림이 당시 시스템 대문 화면을 어느 문서에 삽입했던 그림 파일이다.  시스템 이름은 <E-知'S>라고 붙였다.  나름 고심해서 지은 이름이다.  처음엔 상당히 인기가 좋았다.  당시 이런 사건 정보와 기법/사례가 모여져있던 사이트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나중에 관리가 충분치 않아서 인지, 이젠 거의 개점 휴업인듯 ;; 

(<이지스> 대문화면 ㅎㅎ)

그리고 당시 상사가 추구했던 '경제범죄수사에 대한 베테랑들을 모아 직접 수사팀', '지원팀'을 만드는 일도 실무 추진했다.  당시 만들었던 팀은 조금씩 커져서, 나중엔 지방청에 생겨나면서, 현재 각 지방청 '지능범죄수사대'의 모태가 되었다. 

(당시 경제범죄수사지원팀(?)분들과 함께 만든 사례집 표지 ㅎ)

 가끔 이런 일의 흔적을 혼자 매만지며, '그때 이런 일을 하며 지냈지'라고 떠올리는 소재로 삼는다.


8. 수사국 수사과(현 수사기획과, 2008~2009)

지능범죄수사과 2년 근무를 마치고, <수사과>라는 곳으로 옮겼다.  <수사과>는 경찰 수사에 대한 제도와 자원 운영을 담당하는 곳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게다가 맡았던 '기획 반장' 역할은 그런 일을 집중해서 하는 곳이라 강하게 희망했고 의욕도 많았다.  그러나, 역시 눈코뜰 새 없이 바쁜 곳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2008년에는 호흡이 짧은 단기 기획과 검토 보고서를 주로 해야 해서, '그리 바빴는데, 뭘했나',, 싶다.  다만 그때 수사조직에 대한 직무 분석을 해서 조직 개편안을 책 한권으로 써본 것이 좋은 경험이었다.  

(당시 만든 수사 조직 진단 보고서)

그 다음해인 2009년엔 비교적 긴 호흡으로 일했다.  제도 개선이나 조직 개편을 할 환경이 아니어서 교육 지식 자료를 만드는 일을 많이 했다.  그 해에 책만 4권 만들었다.  경찰청 근무 당시 이런 저런 책자를 만든 경험을 따져보니 보통 2년에 3권 정도였는데, 이땐 1년에 4권 ㅎㅎ

(당시 만든 책자 중 제일 인기가 많았다.  고소 담당자들이 바로 써먹기 좋은 포맷이었기 때문)


그리고 더 보람있었던 일은 수사경찰이 쓰는 서식과 수사 서류 작성례를 수 백개 모아서, 표준 양식과 모범 작성례를 정리해 프로 그램으로 묶은 것이다.  제목은 <수사 도우미>!  기초 작업에 2달, 그리고 감수 작업을 60여명이 1주 합숙, 최종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시스템에 등재하는데 1개월 정도 걸린, 경찰청 기획실무자에겐 꽤 큰 프로젝트였다.  만들면 사라지고, 없어지고, 쓰는 사람없이 먼지 쌓이는 일 많은 우리 업무 풍토임에도, 이 시스템과 프로그램은 여기저기 쓰이고, 많이들 사용하고 있다.

(수사도우미 초기 화면, 현재는 이런 여기저기 자료가 흩어져있는 점이 아쉽다)


9. 인권보호센터(2010년~2011년)

승진 시험을 준비할 때도 되었고, 여러 일이 쌓인 상태에서 '최전선에서 한발 후퇴'해보는 기분으로 당시엔 비교적 조용한 부서로 인식되었던 '인권보호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좋은 곳이었다.  화목하고, 평온하며, 도심 속에 위치한 '공원'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해 8월인가, 서울 모 경찰서에서 수사 중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대대적으로 폭로되면서, 무지 바쁜 부서가 되어버렸다.  뭔가 대책을 세우고, 대내외 요구에 응해야 하는 사항이 폭주했다.  문서를 생산하고, 언론에 대응하고, 뭔가 아이템을 만들어서 알리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런 취지로 '경찰 인권 진단,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하고, 팔자에 없는 영화 제작자(?) 생활을 2달간 밤새 했다. 이때가 경찰 생활하며 여러 일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했던 제일 바쁜 시기였다.  그 결과물을 세미나를 개최해서 상영할 때는 혼자 뭉클, 뿌듯했다.


(영화 CD의 디자인 요청 안-실제 디자인 아니고- 파일이 이것뿐이라-내용은 참 훌륭하다 ㅠㅠ)


여기서도 작은 시스템 사업을 했다.  인권위 권고 사항과 이행 조치, 인권보호에 대한 각종 교육물을 모아서 온라인 교육이 가능한 그런 사이트


인권보호센터 2년차에는 업무를 바꿨다. 인권 보호가 아니라 피해자 보호 업무로,,  이때 피해자보호특채요원(CARE팀)분들을 처음 뵈었다.  심리학 전공자들 특유의 감수성과 역량을 가진 분들인데, 조직 내에서 충분히 지원하지 못하고 있는게 안타까웠다.  지금은 상당히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바가 있다.  

(당시 케어 요원들이 보내준 동기들 사진)

함께 일하는 동안 긴장 관계도 있었다.

뭐든 일을 만들고 성과에 기반하여 자원을 획득하는 내 방식에 대해 '어거지로 밀어붙이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사실이기도 하고 ㅎ).  그러나 성과도 있었다.  경청 대화에 대한 기법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펴내기도 하고, 다양한 사건과 사례 들에 대해 역할을 활발히 하시게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분들의 그 노고에 힘입어 지금은 당시보다 조직의 외형이 커지고, 업무 절차는 자리잡았다.  일이 너무 많다는 피로감을 호소하시기도 하지만.. 앞으로 그 분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당시 같이 만들었던 상담 안내서 : 경찰관이 알아야 할 대화의 법칙)

해당 업무 시기에 '언론 오보 대응'을 마지막 단계까지 했던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다.  작다면 작은 기사였지만, 분명히 잘못된 통계 인용이어서, 정정보도 청구를 했다.  '그냥 넘어가자'는 주위 의견도 있었는데, 정정 보도를 요구하는 단계를 계속 밟아 봤다.  즉 언론 중재위원회-중재 결렬-소송의 절차를 다 거쳐서 최종 정정보도를 판결로 받았다.  이 과정을 겪어본 사례도 드물기에 참고할 분들을 위해 자료집으로 남겼다.

(당시 정정보도 청구 사례 자료집)


10. 경기 군포 경찰서 수사과장 (2012년)

다사다난했던, 인권보호센터에서 2번째 겨울을 보내고 승진 시험에 합격했다.  집 근처인 경기 군포 경찰서 수사과장으로 발령받아, 도보로 출근하는 안온한 시기를 보냈다.  경정 근무복이 익숙해지는 기본 교육 과정도 즐거웠다.  이때 총무 일을 맡아 꽤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었다.

군포에서 공들여서 한일은 사무공간 재편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수사 부서의 사무실/조사실을 분리하는 작업을 꼭 하고싶었다.

마침 공사비가 획득되어, 사무실-조사실을 분리하고 조사실은 영상 녹화가 가능한 투명 탈착식 문을 설치했다.  방마다 진술녹화가 가능한 개별 사무실이었다.  아이디어에 고심했고, 형태는 조악했을지 모르나, 나름 실용적이었다.  당시 업무를 맡으신 실무자들이 노고가 많으셨다. 

(군포 경찰서 수사과-경제팀쪽 도면 : 조사실 설치 전후 : 사이버/지능팀도 유사하게 설치했다)


특히 한 개 조사실은 선면-상담 조사실로 만들어서, 커피머신과 많은 책들도 갖다놓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꾸몄다.  고급스런 서재를 만드는 느낌으로 컴퓨터도 맥으로 갖다놓고, 나름 대리만족을 느껴본 셈

또 군포 경찰서에는 <상담 변호사> 제도를 시작했다.  

인근 변호사님들께 협조를 구해, 매일 번갈아 경찰서에 오셔서 수사민원을 상담해주시는 봉사를 요청드렸다.  변호사님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고, 경찰은 업무 부담을 덜 수 있으며 시민들은 질높은 상담을 제공받는 서로 장점이 있는 기획이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경찰서들이 꽤 많다. 

과장으로 첫 근무지였기에 의욕을 앞세운 실수도 많았다.  정말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  아직도 집 근처라 몇몇 분들과는 가깝게 뵙는다. 참 좋은 배움을 얻었다.

(군포시 당숲에서 사이버팀/지원팀과)


11. 안산 상록 형사과장, 금융정보 분석원, 영국 팀훈련(2013~2014년)

군포경찰서에 있으면 갑자기 인사가 빨라져서, 희망했던 발령처 간 사이가 떠서, 짧게 짧게 인사 이동을 했다.  안산 상록 경찰서 형사과장으로 겨우 2주밖에 머물지 못했다.  그리고 금융정보분석원에 파견, 7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근무했다.  이 때도 좋은 동료들을 뵈었다.  타부처 분들과 같이 일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주로 관세청 분들과 같이 일했는데, 정겹고 유능하셨다.  관세 추적 등, 자금 흐름 분석에 어설픈 나를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친철히 지도해주셨다.

그리고 금융정보분석원 근무 중 전년부터 준비했던 영국 단기 훈련을 다녀왔다.  7주 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는데, 경찰 기관(NCA, 런던경찰청, 포츠머스 경찰서)과 학교(포츠머스 대학) 섭외가 모두 잘되어 알찬 시간을 보냈다.  NCA에 연일 출근하면서 각 부서별로 부서장들에게 업무 설명을 들었고, 런던과 포츠머스에서도 성의있는 견학을 했다.  아마 이만큼 잘 안내받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팀훈련 동료들과 NCA의 포토존?에서 ㅎ)

덕택에, 영국 경찰의 범죄 정보 운용실무에 대해 다양한 관계자들과 인터뷰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외국에서 혼자 살아보기',,라는 흔한듯 흔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짧은 시간이지만, 비싼 영국 물가에 맞춰 안먹고 걷고, 허름한 곳을 돌아다니며 숙박하는, 즐거운 고학생 코스프레를 했다.


(

(영국 테이트 박물관에서,, 기관 출근했다가 나온 길이라 양복 차림)


(스코틀랜드 여행, 점프!)


12. 송파경찰서 경제범죄수사과장(2014~2016년)

금융정보분석원에서 1년쯤 파견을 마쳐갈 때, 송파경찰서 경제범죄수사과 발령을 받았다.  당시 경찰청에서 시범 시책으로 처음 만들어 진 부서였다.  100명이 넘는 대규모 수사과를 경제-지능으로 분할하여 운영을 깊히 있게 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냥 한 개 과를 두개 과로 나눈 거',,라고 말하기에는 운영 체제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주 많았다.

좌충우돌 많았다.  새로운 방식으로 일할 수 있길 바랬기 때문에 여기서도 사무 공간을 재편했다.  군포에서처럼 소규모로 분할할 여건이 되지 않아 크게 몇군데로 나눴다.  다만, 동선을 차단해서, 경찰관 이동로와 민원인 이동로를 나눴다.  적어도 사무실에서는 소음에 시달리지 않길 바랬다.

여기서도 상담변호사제도를 운영하고, 상담실을 따로 설치했다.  상담실엔 그날의 상담팀이 민원인들이 상담하다가, '오 이거  재밌는 사건인데?'하면서, 전화 사기범들 잡아온 적도 있었다.

(상담실 앞 카페, 직영이라 값도 싸고 커피가 아주 고급지다)

(신설 부서였기에 손님 많았다.  당시 경찰청장님 방문, 그리고 당시 서장님, 우리과 구성원들)  

송파에서 인연도 아주 좋았다.  유능하고 선량, 성실하셨다.  난 이런 분들과 같이 일한 것이 정말 감사하기에 '경찰청이 제일 바쁘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할일 다 하는거야'라고 말하는 일부 경찰청 구성원들에게 쓴웃음을 짓는다.  경찰서가 더 바쁘고 힘들고 유능하며 책임감이 강하다.  그분들께 부끄럽지 않으려면 정말 겸손하고 성실하고 매일 매일 배우며 일해야 한다. 

(송파서 경제범죄수사과 앞에 걸린 현판. 다들 훈남 훈녀)


13. 범죄분석담당관실(2016년~현재)

그리고 지금 여기, 경찰청 범죄분석담당관실에서 2년째에 돌입했다.  오늘 출근길, 날씨가 풀리니, 경찰청에서 2번째 맞는 봄이 실감이 난다.

지난 한해도 밀도 높고 정서적으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업무와 근무 문화에 대해 이만큼 적응이 쉽지 않은 부서에서 일하는 것은 20년만에 처음인 듯하다.  그래서 가장 도전적이다.  그간 혼자 일하거나(거의 경감때까지), 아니면 계급으로(경찰서 과장때) 일했다면, 여기서는 팀웤을 만들어 가고, 업무의 원칙을 정착 시켜야 하는 쉽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업무 자체는 아주 재미있다.  바라왔던 업무를 일로서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직무 풍토'의 고단함이야, 그런 감사한 마음으로 풍분히 극복가능하다. 


<마치며> 

쓰고보니, 20년이 금방이다.  크게 해놓은 것도, 배운 것도, 없이 그냥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닌가 스산하기도 한데, 그것도 또 사는거 아니겠나.

그래도, 어떤 일을 맡더라도, 그 일을 더 잘해보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진지했던 것은 대견하다.

6개월이상 근무지를 세어보니 20년 동안 12가지 업무를 마쳤다. 12간지로 따지면 한 바퀴 돌았구나.  이 12가지의 경험 속에서 지난 20년간 내 속에 무엇인가 성숙하거나, 풍성하거나, 잘 여물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조금씩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면서, 할 수 있는 힘을 조금씩 키워왔던 것이었으면 좋겠다.

이제 남은 10년 정도를 어찌 보낼지, 흥미 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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