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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도깨비! 시간의 자유로움과 순간의 삶 본문

읽고 보며 느낀 점

너의 이름은? 도깨비! 시간의 자유로움과 순간의 삶

미리해치 2017. 2. 18. 13:38

<너의 이름은?> <도깨비>!


오늘에야 <너의 이름을>을 봤다. 


이런 훌륭한 작품을 항상, 남들보다 한 박자 늦게 보곤 한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즐거움과 감흥을 주는 천재들과 만들어내는 분들의 노력에 감사를 드린다. 


<너의 이름은?>을 보며, 시간의 흐름과 인과과정과 결과의 이어짐에 대해 생각했다.



최근에 본 또 다른 드라마 <도깨비>에 함께 생각이 이어졌다

 

도깨비는 극중에서 죽지 못하는 존재, 사람들은 죽고 저승을 갔다가 다시 태어난다.

 

죽음을 허락받은 도깨비도 승천하지 않고 연옥에 머물다가 다시 돌아온다.


 

죽음이 끝이라는 인식을 벗어난 세계관이다. 죽으면 슬프지만(주인공들이 각각 한 두번씩 죽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윤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거나, 삶의 태도에 선하게 영향을 끼친다.

 

죽지 않는다면, 이 세계가 그렇게, ‘죽음으로 단락이 완전 마감되지 않는다면, 그걸 전제로 한, 일직선으로만 흐르는 듯 느껴지는 시간의 물살은 그렇게 절대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시간의 물결이 역류도 치고, 회오리도 일며, 예기치 못한 물길로도 흐를 것 같은 상상의 여지를 준다.

 

그런 암시를 주는 장면이 드라마 곳곳에서 나온다. 철종시기에 이미 도깨비는 첫사랑 소녀의 얼굴을 봤다. 또 자신이 죽은 후에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이 앞에서 웃고 있는 듯한 미래를 보기도 했다.

 

 

<너의 이름은?>에서도 시간은 자유롭게 움직인다.


두 주인공은 서로 몸이 바뀌고, 꿈을 꾸듯 일상을 교환하지만, 둘 사이의 시간은 사실 어긋나있다.


 

시간이 일치하는 순간은 특별하게 허락된 신성한 장소, 그리고 신성한 시간대에서 기적처럼 가능했다.

 

평행하게 흐르는 줄 알았던 순간이 실은 어긋나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주인공은 극적으로 움직인다.  


흘러갔던 시간들이 만나는 접점을 찾아내어 이미 지나간 것(過去)를 아직 오지 않은 것(未來)으로 뒤바꾸기 위해 지금 있는 것(現在)에 영향을 미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이 두 아름다운 드라마와 영화에서 시간이라는 소재에 주목한 것은 시간의 비선형성이라는 몽환적인 썰을 풀기 위해서인가? 그건 아니다. 최근 생각하게 된 삶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열한 계단채사장삶은 계단으로 발전하는가?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진행자채사장님은 최근 <열한계단>이라는 책을 펴냈다.

저자에게 충격적이었던 11가지의 책또는 사건을 결부하여 삶이 성숙시켰던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저자가 설명하는 방식인 11계단의 인생이 그렇게 희망차지는 않다


계단을 한칸 한칸 올라서 깨닫다 보니, 삶의 정점에 올라갈 법한데 그게 아니라이 삶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구나 라는 것이 오히려 깨달아졌다는 것이다그렇게 슬픈 소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면제목과 달리삶이 계단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뫼비우스의 띠처럼 발아-성숙-정점-쇠락을 반복하는 것이다아니면 좀더 잘 봐줘도, ‘나선형의 올라섬일 것이다. (그리고 간혼 그 끝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도 할테지)


 

<무엇이든 끝을 생각하라 / 결국 소멸을 맞이할 필연적 존재>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나오는 행동의 법칙 중 하나는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은 궁극적으로는 죽음이다. 그리곤 개인들의 삶의 단위에서는 졸업’, ‘퇴사’, ‘이직’, ‘프로젝트의 성패등 공적인 것과, 결혼/이혼, 자녀의 출생/결혼 등 사적인 생활에서의 변화 들이 있다.

 

우린 이런 변화의 결말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바람직한 마무리를 생각하며 일한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올바르고자 하고, 타인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매듭짓고자 한다. 대충 대충 끝내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성실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왜 꼭 그래야 할까?

 


가상 역사 소설 <무인행>의 작가 <소년행>님의 최근 소설 <패왕성>에는 대략 다음 대화가 나온다.

 

(반군의 장군) : 저희의 거사가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알고 있습니다.

(주인공)  : 한 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을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저희의 건국 역시 실패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필연적으로 실패할, 죽음을 앞둔 존재이니까요

 

그렇다. 다들 언젠가 죽는다. 스스로 목표하는 삶의, 직업적,학문적, 인간적 목표가 있다면 그건 죽음앞에서는 다 사라진 필연적 실패의 대상들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결론이 정해져있기에 더 노력할 수 있다.

 

안될게 뻔한데 왜 굳이 해야 하냐?’ 직장에서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  그 때 하고픈 이야기들이 지금 적어보는 말들이다. ‘결국 정해진 삶의 끝을 생각할 땐, 그런 필연적 실패를 오히려 상수로 생각하며 다만 성실하게 완성하려고 노력하고 사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 거라고,

 

  

다시 돌아와서, 이 순간의 행동이 삶의 결과이다.

 

<너의 이름은>의 타카와 마츠하는 서로의 시간 속에서 만나고잊혀졌다.  둘의 시간이 일치하는 곳에서 결국은  만났지만이건 두 사람에게 그간 지나간 많은 형태의 만남 중 한가지일 뿐이게 결론일 수 없다.


<도깨비> 김신과 지은탁의 사랑은 영생과 전생의 오고감 속에서 어떤 결말로 마감될 수 없다.

 

미래를 기대할 것도, ‘과거를 특정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현재에 대한 나의 행동만이 삶이다.

 

지금 현재에서의 나의 행동만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무한의 영역 속에서의 시간과 공간, 관계를 연결한다.


순간이 삶이고 과정이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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