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호 : 스마트치안, 경찰데이터 A&R을 위한 공부와 연대

말그릇(김유나) 본문

읽고 보며 느낀 점

말그릇(김유나)

미리해치 2018. 12. 26. 05:44

나에게도 말 때문에 상처받았던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을 몸과 머리가 새기고 있다.  말로 인한 상처, 겪기도 했고 주기도 했다.

내가 아파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아프게 하는 태도 도 몸에 익혀버렸다. 위계적 조직에서 주어진 역할이 더 가속화했다.

(이걸 저자는 '무시행학습, 대리강화, 모방으로부터 학습'이라는 심리학 이론을 통해 설명해주고 있다)

말은 사람을 드러낸다. 사람을 키우고 살릴 수 있다.  아주 드물게 말을 통해 내 자신이 인정받고 커지는 듯 했던, 따뜻한 빛 아래 서있던 것 같은 몇몇 순간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좋았던 때보다 아팠던 때를 더 많이 기억한다. 그렇기에 내게 말은 어렵고, 불편하며 무거운 매개체였다.

말의 뿌리는 사고의 공식과 감정이다. 그런데 그것의 뿌리는 깊고, 중간 중간 맺혀있는 크고 작은 뿌리혹들의 존재를 쳐다봐야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나의 과거의 겪은 감정과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며 몰입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책에서 설명해주는 그 원리에 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대입하는 것에 의식적으로 거리를 뒀다. 더 적극적으로 읽으면 더 깊이 이성과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질텐데, 책장을 읽으면서도 눈 너머로 들어오는 것에 은근히 스스로 장막을 쳤다. 내 자신이 들었던 말, 내 자신이 했던 말들과 그 말들이 담겨있는 말그릇이 생긴 모양과 담긴 말물들에 대해 아직도 쉽게 인정하기 어려웠다.  내 마음 속에 옹이가 생겼다면, 이젠 밝은 볕에 옹이를 꺼내 비춰볼만 하건만, 여전히 쉽지 않다. 여전히 스스로가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세상에 대해 평탄한 눈으로 보는 것을 힘들어 하고 있다.

이렇게 살아온 삶 속에서 스스로 '말'을 정의하길 '사실만 전하면 되는 것',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면 되는 것', '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 등 장식, 도구로서 한정 지었다. 미사여구, 긴 말을 싫어하고, 감정으로 접근하는 것을 낭비로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게 아님을 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더라도, 정말 관심과 성의있는 태도라면 금방 공감대와 공명의 바탕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렇듯 말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과 태도이다. 이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말그릇을 키우는 과정이다.



내 말은 내것이다. 하지만 입에서 나와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순간, 그 말은 남들에게 전달되어 영원히 기억된다. 

그것이 아니면서도 나의 이름이 붙여 돌아다닌다. 난 그렇게 돌아다닐 나의 말을 따뜻하게 떠나보냈는가? 차갑게 놔두고 잘랐는가? 

뾰족하고 보기 싫은 말은 실은 그 그릇의 균열에서 생긴다.  그 말이 튕겨나오기 까지, 쌓여온 감정의 흐름과 형성된 태도가 그 바닥에 깔려 있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말들이 담겨진 그릇 속 물결의 흐름에서부터 짚어야 한다.  

이것은 감정이기도 하고, 사고의 공식이기도 하며, 배여진 습관이기도 하다. 그 감정, 생각의 공식, 습관을 닦고 키우는 것이 말그릇을 보살피는 것이다. 

감정을 바꾸기 위해선 교감하고 대화하거나 혹은 운동하고 좋은 감정을 추구하면서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폭풍같은 감정이 말그릇을 뒤흔들 때, 그 감정을 부정해선 안되지만, 잠시의 큰 쉼호흡으로, '이 감정은 무엇일까', 심연을 들어다보고 말을 표현하는 것도 늦지 않다. 굴욕감, 불쾌감, 미안함, 열등감, 좌절감, 원망 등 여러 감정은 무엇이든 존중받아야 하되, 정직하게 인식하고 표현할 때 가치있게 전달될 수 있다. 이 과정을 저자는 출현-지각-보유-표현의 과정이라고 풀이한다.

그렇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표현하면, 내 감정과 상대의 감정도 긍정할 수 있다. 감정을 바라보기 힘들기에 너와 내가 실은 감정에 근원을 둔 갈등이 있다는 것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고, 에둘러 회피하며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생각의 공식은 삶의 결과물이다. 이걸 어찌 쉽게 바꾸랴? 인정하고 그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려면 아이러니하게, 그 공식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다뤄주고 서로 알게 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나는 어떤 공식의 사람인가? 스스로를 다양한 상황에서 관찰하고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줄이고, 갯수를 한정하고, 항목별로 요약하며, 잘 전달됐는지 확인하고, 의견을 묻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되지 않고, 의식적인 훈련과 기술 연마, 절제, 정서적 공감 전달이 되어야 한다.


잘 듣기의 감정 공유를 너무 멀게도, 너무 가깝게도 하지 않는 적당한 거리가 될 때 잘할 수 있다. 

누구나 '긍정적 의도'가 있다. 그 싹을 잘 키워줘야 한다. 


말을 정말 잘하는 사람은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다. '질문'은 화자와 청자를 묶는 효율적이고 창조적인 매듭이기에. 

누구나 질문을 한다. 자문자답을 한다. 자문자답도 소중하고, 오히려 더 중요하다. 이런 질문과 생각들을 흩어뜨리지 않고 잘 연결해가야 한다. 질문 기법을 바로 쓰려 하지 말고, 또 질문했다가 답없는 시간을 견디고, 기다려라. 

심판자가 아니라 학습자의 질문을 하라 (잘 되고 있나, 내가 무얼 할까? 좋은 점은 뭘까? 무엇을 배울수 있는가?)

질문의 often 법칙 : open, if, target, emotion, neutral


말을 한다는 것은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이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나에게서 시작한다.

말이 단순히 입안에서 생산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서 발현된다는 것을 새삼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말그릇을 만들고 키우고 닦는 생활이라는 것은 그 이미지만으로 생활을 깨끗하고 단촐하며 깊이있게 하는 단순하고 강력한 상이다. 

'말그릇'이라는 말은 참 잘 지은 공감각적인 이미지이다.

'말그릇'이라는 단어는 깨끗하고 넓고, 깊으며 잔잔한 도자기, 조선 백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 안엔 부드럽고 따뜻하고 향기로운 물결이 차 있을 것 같다. 깊고 넓고 부드러운 그릇 속에 따뜻한 잔잔하고 향기로운 물결을 채우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은, 그 묘사만으로 어떤 사람일지 자연스러운 상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말그릇을 내 속에 가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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