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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아들들과 같이, 지리산 천왕봉 1박2일

미리해치 2018. 8. 2. 22:37

지리산을 몇 번째인가,,,, 

1)2001년 홀로 2박3일 종주, 2)2003년 다시 시도했다가 무릎 통증 재발로 실패, 3)2015년에 다시 시도해서 성공

4)2016년에는 겨울 1박2일 종주, 5)2017년 5월 큰 아들과 함께 1박2일 종주

6)2017년 여름 당일 트레일런 대회 신청해서 완주는 했으나, 시간엔 맞추지 못해서 홀로 귀경 

30대 이후에 5번 종주, 그리 많지도 않다. 

사람들이 '지리산에 왜 그리 자주 가냐'고 물어볼 때 나의 답변은 '편해서'이다.

여러 번 가서  노고단-천왕봉 코스는 익숙해졌고 길도 선명해서 길 잃을 우려도 없다.

체력이 허락하는 속도로 걷다 보면 머물 곳과 물을 마실 곳이 계속 나타나는 아주 잘 닦여진 코스이다. 

게다가 노고단까지 버스 타고 올라가면, 완만한 능선을 길게 오르내릴 뿐, 급한 경사로도 별로 없다. 

그러니, 편안하고 안전함에도 산 공기를 실컷 맡고, 산 속을 오래 걷는 시간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으며,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산 속의 별밤과 일출 일몰을 볼 수 있다.  시간과 비용, 위험 대비 가성비 최고의 만족감을 주는 산길이다.


그런 지리산에 이번엔 아들 둘과 같이 나섰다. 

종주를 하고 싶었으나, 산장 예약을 몇 차례 시도했어도 실패했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평일인데 이렇게 예약이 안된다니, 이상할 정도였다.

다시 살펴보니, 1박 2일 종주 코스의 숙소 역할을 하는 '벽소령 대피소'가 11월말까지 공사중이라고 한다. 

그게 풍선효과가 있었나, 인접 대피소(세석, 연하천)까지도 딱 맞은 일정으로 예약을 못하고 겨우 장터목 1박만 예약했다.


부득이 계획을 수정했다. '종주'에서 '장터목 1박-천왕봉 일출-하산'으로 바꿨다.

아들(초6, 중1) 2명과 나섰으니, 그냥 뭐든 간단히 대충 먹고 자기로 맘먹고, 엄청 가볍게 짐을 쌌다. 

산에서는 2끼 먹는 계획으로, 1끼는 김치통에 삼겹살을 넣어, 구워먹기로 하고, 라면 4개, 쌀 6인분. 참치캔2개 김 2개를 쌌다.

옷은 입고갈 옷 외엔 잘때 입을 반팔 티, 양말만 넣었다.

(가벼워서 좋았으나, 옷 없어서 춥고, 먹는 게 너무 대충이라 아쉬었다) 


7.31(화)

집에서 6시40분 나서서,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김밥을 먹었다. 

8:40 진주행 프리미엄 버스 탑승, 최근 버스의 발전상(?)을 느꼈다. 

거의 비행기 일등석 느낌의 넓이와 쾌적함 ㅎ


진주에 못 미처 원지 터미널에서 갈아타고 지리산 입구인 증산리 터미널에서 내려 '기사식당'에서 돼지국밥, 산채비빔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그리곤, 아이들과 시외버스터미널부터 지리산 등반 안내소인 두류동 입구까지 걸어갔다. 

1.5킬로, 이 길은 항상 좀 지루했다.


산에 들어서는 중산리 야영장에서 각자 생수병 2병, 나는 6병, 총 10병의 물을 채우고 올라갔다.

(좀 많은가 싶었으나, 부족했다.  중간에 유암 폭포에서 추가로 물을 좀더 받아 갔다)


두류동 입구에서부터 칼바위를 거쳐 장터목산장과 법계사/로터리산장의 갈림길에서 왼쪽 장터목 산장쪽으로 올라갔다.

그간 천왕봉 등정 후 하산길은 법계사로만 내려와서, 장터목 산장 쪽 길은 처음이었는데, 계곡이 많고, 다양한 볼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중간쯤 올라가다가, 바위들이 가득한 벌판을 만났다. 

숲 길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그런 풍광도 이채로웠지만, 그 바위 위로 수백개의 자잘한 돌탑이 쌓여있었다.

이 길을 지난 많은 사람들의 작은 마음과 길 위에 쌓여온 세월이 느껴졌다.

신기한 풍광이라 인상 깊었는데, '너덜지대 돌탑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장소였다.

곳곳에서 계곡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물이 떨어져 있을 때 목을 축이고 몸을 식힐 수 있었던 '유암폭포'도 멋있었다.

어른이야 산을 오르며 속세의 번뇌들을 반추하고 지우고, 안 흘리던 땀을 흘리며 녹슨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아이들이야 그러한가? 원래 몸을 쉼없이 움직이고, 반추할 것 없이 그때 그때에 집중하는 '그 순간을 사는 밝은 존재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길이 지루하면 미안할진대, 이번 산행은 여러 장면들이 색다르게 등장해서 감사했다.

유암폭포

점심을 먹고, 산입구 초입에서 출발한게 13:40인데, 거의 18시즈음에 이르러,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여긴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대피소이며, 정상인 천왕봉 바로 밑 베이스캠프로서 포스가 있는 곳이다.

방학을 맞아, 가족이나, 학교(?)단위 예약자들이 많아, 사람이 가득했다.

장터목산장(출처 : 추억만들기님 티스토리)

가져온 음식들로 저녁을 먹었다. 삼겹살을 김치통안에 같이 담아서 제육볶음 비슷한 느낌으로 구워먹이고, 같은 재료에 물을 부어 끓인 김치찌개, 김과 같이 저녁을 먹었다.  못 먹을 바는 아니었지만, 고기가 너무 타고, 가져온 양념(소금, 고추가루 등)이 하나 없이 김치와 고기만으로 맛을 내려니, 그저 배고파서 먹은 느낌이었다. 따라와 준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20시쯤 얼추 정리를 끝내고, 아이들을 자리에 눕혔다. 다음 날 일출을 보기 위해 03:30에 일어날 요량으로 일찍 자도록 했다. 그러나 과연 '아이들이 일찍 잘까?' 염려하면서, 도움이 될까 싶어, 두 아이의 발과 종아리를 주물러 줬다. 

아들 두명이 한살 차이인데도, 기질이나 자란 정도가 차이가 있다. 

작은 애는 천성이 애교가 많고 통통하고, 첫째는 의젓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키가 크고 몸이 마른 편이다.

그런 차이가 있는 두 아들 모두를 번갈아, 천천히 발과 종아리를 주무르다 보니, 묘한 행복감이 느껴졌다. 


아이들을 재우고 잠시 밖에 나가, 별을 보러 했으나 (지리산에 오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안개, 구름 속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연락오는 게 있어서, 계속 답변주고 받다가, 22시쯤 잠이 들었다. 


8월1일

새벽 3시, 일어났다. 

이른 아침을 먹고자 취사장에 가다가, 하늘의 별을 봤다. 

그러나, 예전 감탄했던, '쏟아지는 별빛'이 아닌, '드문드문 꽤 많은 별'이라, 아쉬웠다. 

평지보다는 훨씬 많지만, 그래도 '여기도 이젠 별이 줄어가는가', 속상했다.


취사장에서 라면 3개+참치2캔, 어제 남은 식은 밥으로 준비했고, 아이들을 깨웠다.

노곤했을텐데, 투정하지 않고 일어나더니, 라면을 맛있게 먹어줬다. 

배낭을 다시 싸고, 랜턴 하나씩을 머리에 쓴 후, 03:50분쯤 천왕봉으로 출발했다.

지리산에서 새벽 길을 나설 때, 접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 짙은 파란 색의 하늘 아래에서 점차 밝아오는 여명이다.

이번에는 그 아름다움을 아이들과 함께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지리산 여명(출처 : 임대영님 티스토리)

어둠 속의 고사목 평원, 통천문을 지나, '거의 왔구나'의 신호인 그 철제 계단을 밟으며 도착했다. 

일출 예상 시간은 05:35이고, 소요 예상시간은 1시간 30분이라, 아이들 걸음으로는 약간 늦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인 05:15분쯤 도착했다. 

일출 시간까지 거의 20분을 기다려야 하고, 세명 모두 여벌로 가져온 옷이 없어 추위에 떨었다. 준비 부족을 매우 반성했다.

특히 큰 애는 마른 체형에 추위를 많이 타서, 꼬옥 껴안고 기다렸다.  기운이 빠져가는게 느껴지고, 마음 조급할 즈음, 함께 일출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왓'하고 감탄사를 터뜨리는 순간, 벌떡 일어나서 그 광경을 봤다.

태양은 늘, 대거 주위가 환해져서, 다들 두리번 거리며, '왜 안보여?, 이미 뜬거 아니야?' 라는 말을 주고받을 때 불쑥, 선명하게, 엄청난 존재감으로 등장한다.  지평선, 산등성이, 그 너머의 어디에서부터 아주 작지만 엄청나게 선명한 붉은 조각으로 뾰족 튀어나와 거대하게 떠오르는 순간에  '아, 태양이 이렇게 떠오르는구나'라는 지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천왕봉 일출(출처 : 씨앗의 노래님 홈페이지)


등산을 즐겨하는 편이라, 우리 마을 뒷편 수리산에서도 일출을 간혹 봤지만, 천왕봉 일출은 첫 등정했던 2001년 이후 처음이었다.

날씨가 맑고 거의 비가 없는 가뭄 시기라, 당연히 일출을 보려니 생각했는데, 함께 온 등반객들이 '2번만에 봤다.', '3번만에 봤다'라고 말하시는 것을 보니, 우리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약 5분 동안의 찰나동안 어마어마한 존재감으로 우뚝 떠오르는 일출, 거대하게 솟구치는 에너지를 감상하다 보니, 어느덧, 5분만에 태양은 쨍하게 내리쬐는 일상이 되었다.


5분의 일출을 뒤로 하고, 법계사 쪽으로 내려갔다. 이 길을 몇번씩 내려가지만, 언제나 급경사를 통해 급히 지상으로 내리 꽂는 긴장감 넘치는 길이다. 

약 5시간 정도에 걸쳐 지상에 내려왔다.  (큰 아이가 정상에서 저체온증 처럼 에너지를 급히 뺏겨, 로타리 산장에서 한시간을 재웠다.)


그리곤 순두류 초입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두류동 매표소-중산리시외버스터미널-원지 터미널을 거쳐 남부터미널-집으로. 다시 약 6시간 반을 거슬러 집에 도착했다. 오히려 산이 개운했고 도시는 억 소리나게 더웠다.


산에서 보낸 2일의 시간이 좋았다. 떠나기전 속상한 일과 찌질한 나 자신을 산속에서 되짚으며 덮었다. 

과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삶을 살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건 스스로의 노력에 달려있다. 

하지만, 아들들과 2일동안 걷는 동안의 나는 머리 속으로 많은 것을 미리 계획하고, 아들들의 체력과 감정에 신경쓰며 동선을 짜는 사람이었다. 제일 무거운 짐을 지고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지친 아이들의 발을 주무르면서 행복했다. 쉽게 볼수 없는 아름다움에 감사하고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풍광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삶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 이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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