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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며 느낀 점

(산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

미리해치 2017. 3. 5. 16:24

얼마 전 <너의 이름은>을 보고 감동 받았다.  일본 만화책은 오래껏 읽었지만, 애니메이션은 잘 보지 않았는데, 흥미가 생겼다.

일단 이번 주말에 <너의 이름은>의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 두편<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을 찾아서 봤다. 

나름의 공통된 주제와 표현 방식이 느껴져 메모해본다. (내용도 요약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하세요)


<초속 5센티미터>


'초등학교 때 벚꽃이 떨어지는 것('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 5센티미터래')를 같이 보던 첫사랑 여자 아이(아카리)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의 감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남녀 주인공은 초등 졸업식 때 헤어졌다.  남자 주인공(타카키)은 중1 겨울방학 때 폭설이 내리는 머언 거리를 몇번의 기차를 환승하며 찾아간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날씨, 연착, 몇번의 기차 환승, 중1남자아이의 무모한 시도와 절망감, 막막함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서로 못 만날 수도 있었건만, 처음 약속 시간 (저녁 7시간)을 훨씬 넘긴 (11시 30분쯤) 시간까지 기다리던 아카리 덕택에 감격스러운 재회의 순간을 맞는다.  소년 소녀 다운 첫키스를 나누고, 어느 헛간에서 이야기하고 밤을 새운다.


키스의 순간 타카키의 독백이 인상 깊다.  "견딜수 없이 슬퍼졌다"고 말하고 있다.  

사랑의 감정은 느낄 수록 외로워진다는 것이 역설이다.  너무나 상대방을 원하고, 느끼고 싶지만, 그럴 수록 나와 다른 존재이며 결코 합일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사랑이다.  이 밤이 아마 타카키가 이후 계속 짊어지고 사는 그리움과 공백, 상실감의 원천 기억이었으리라


이 후 얘기는 타카키의 고교 시절(2부), 성인시절(3부)로 이어지고 마무리된다.  이후 타카키는 무언가의 상실감을 갖고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단 한명도 가까이 두지 못했다.  1cm도 가까이 두지 못했다'고 표현한다.  2부에서 타카키가 살던 가고시마의 섬에서 일본의 우주선이 발사되는데, 이는 타카키의 심정과 싱크로되어 표현된다. '아무 것도 없는 우주를 무엇을 찾고자 계속 여행하는 것일까?' 


마지막 3부에서 아카리는 결혼을 하고, 타카키는 외로운 일상을 보낸다.  둘은 어릴 적 같이 보낸 동네를 산책하다가 스치는데, 결국 서로를 돌아보지 못한다.  


'애절한 사랑이야기'라고도, '이어지지 않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해석할 수 있지만, 난 이게 '누구든 갖고 있고, 견뎌나가는 삶의 외로움과 그리움'인 듯하다.  아카리와 타카키가 어쩌다가 서로의 감정을 마감했을지 극중에선 나오지 않지만, 그냥 그렇게 말라버렸을 수도 있다.  서로 찾으려면 찾을수 있었겠지만, 또 그러지도 않았다.  아카리는 결혼을 하고 타카키는 외로움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 또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누구든 자신의 우주에서, 무언가를 찾고, 잃고, 잊고, 누군가는 의지하고, 누군가는 홀로 가는 것이다. 



<언어의 정원>


비가 내리면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섬세한 고등학생 타카오와, 학생들에게 이지메에 시달려 출근 거부 증세에 시달리는 여교사 유카리는 비가 내리는 날마다 신주쿠의 공원에서 만난다.

 타카오는 '수제 구두 장인'을 목표로 하고, 이혼한 어머니와 직장인 형과 함께 살며 가사일을 돕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는 속깊은 소년이다. 소년 타카오는 유카리를 동경하지만, 유카리의 사정은 조금도 모르고 있다.  

6월부터 8월까지 장마철의 공원, 별말없이 소통하는 둘의 모습이 촉촉하게 묘사되어 있다. 거의 종반까지 특별한 사건이 없음에도 음악, 독백만으로도 충분히 화면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유카리는 드디어 학교에 나올 수 있게 되어, 퇴직 절차를 마무리한다.  타카오는 이때에야 유카리가 자기 학교 교사였음을 알게 된다. 

거의 마지막 순간, 타카오가 유카리에게 마음을 고백하지만, 유카리는 밀어낸다.  그리고 바로 후회한다.  아파트 복도에서 서서 타카오는 유카리에게 원망의 감정을 쏟아내는데, 오히려 이때가 의젓하게만 보였던 타카오가 자기 나이(16살)만큼 감정을 표현하는 솔직한 순간이었으리라.   둘 사이의 솔직한 감정을 털어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나고, 서로가 소식을 주고받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느낀 점

<너의 이름은>이 갖가지 비현실적 장치(몸 뒤바뀜, 혜성, 시간 축 겹침)들이 작동하는 동화이고, 그 끝도 동화다운 해피엔딩을 암시하고 있다.  반면 <초속 5센티미터>는 아련한 첫사랑은 금새 휘발되고, 고독하게 견뎌나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어두웠다. <언어의 정원>은 그 사이쯤의 정서인듯 했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서 일관된 주제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남녀 주인공'이며, '닿을 수 없는 상대'에 대한 소통의 열망이다.  그럼에도 감독은 속 시원하게 맺어주는 일이 없어, '커플브레이커'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몸이 바뀌고(너의 이름은)', '12살 연상의 여교사(언어의 정원)'이 아니더라도, '7시간의 눈밭을 달려 첫키스를 한 첫사랑'(초속 5센티 미터)이 아니더라도, 사람 사이의 간격은 우주만큼 멀다.  그 간격을 어떤 방식으로 채우거나 견디거나 하는 것은 각자의 삶의 애니메이션이다.  

이 에니메이션에서 아름답게, 혹은 슬프게 묘사하고 있는 사건과 감정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비슷한 추억을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만들어갔을지가 각자가 삶에서 받아들이는 운명이고 인연이다. 


그런 감정이 '나의 이야기'라고 느껴지기에 (물론, 영상과 음악으로 아주 아름답게 만든 나의 이야기 같지 않은 나의 이야기), 감독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닐까?


<덧붙여> 최근 계속 듣고 있는 팟캐스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메인 진행자 '채사장'이 자신의 인생 에니매이션으로 <초속 5센티 미터>를 말했는데, 그럴만 하겠다.. 생각되었다.   

언젠가 채사장은 노량진 역에서 눈이 내리는 장면을 보고,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내가 이 장면을 보고자 태어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웬지 초속 5센티미터에서 소년이 소녀를 만나러 가기위해 7시간의 기차를 환승하며 찾아가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감정와 연결된다.  

또한 채사장은 최근의 책 <열한계단>에서 구도하듯, 진리를 찾고자, 삶의 지혜를 추구하는 인생을 지향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여정이 외롭고 슬플 것 같이 느껴지는 필체이다.  그런 필체가 이 영화에 나오는 '먼 우주 공간에 무엇을 찾고자 고독하게 떠나는 우주선'을 떠올리게 한다.    

아, 삶의 이 까맣고 쓸쓸하지만, 따뜻한 외로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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